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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국국어교사모임 Jan 26. 2021

일하는 이들의 땀이 눈물이 되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조미현 인천상정고 educhomi@hanmail.net

- 《땀 흘리는 글》, 《땀 흘리는 시》를 통해 느낀 일의 기쁨과 슬픔


고등학교 때 교회에 가면 매번 “애쓰고 땀 흘리고 노력하게 하시고”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시는 목사님 말씀에 가슴에 뭉클해지고 그렇게 살고자 마음을 다짐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월급은 사이버 머니, 통장은 정거장”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만큼 닳고 닳은 17년 차 직업인이 되었다. 교사를 막 시작했을 무렵에는 ‘교사’는 단순한 돈벌이와는 다른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뭔가 온갖 신성성과 가치를 부여하기도 했는데 말이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다양한 직업인의 이야기가 담긴 《땀 흘리는 글》(송승훈 외 3인 엮음, 창비교육, 2020)을 읽으면서 그래, 교사가 별건가, 교사만 특별히 힘든가. 모든 밥벌이는 이렇게 어떤 면에서 지겹기도 하고, 신성하기도 하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땀의 시작-이유-슬픔-소외-위기-방향-의미” 일곱 가지로 분류된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교사를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은 어떠했는지, 어떤 일에 상처를 받았고, 언제 보람을 느꼈는지, 앞으로 나는 직업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직업인이 된다는 건 


《땀 흘리는 글》을 읽으면서 직업인이 된다는 것은 내 일과 관련한 나만 간직하고 싶은 비밀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뿌듯함과 슬픔이 함께 쌓여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몸과 마음을 쏟아 땀을 흘려 일하다 보면, 인도인 할머니 승객을 정성스레 돌봤던 김수련의 <죽비 같은 인연>의 승무원처럼 ‘굳이 나서서 힘들게 일하고’ 나서 특별한 인센티브를 받지 않지만 애틋한 마음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아들 승객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것이 안쓰러워,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도착할 때까지 어머니는 내가 돌봐 드릴 테니 아드님은 조금 쉬시라고. 할머니는 평소 잘 못 움직이신 탓에 몸이 불어 있었고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를 입고 있어서 화장실로 모셔 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할머니를 도와드렸고 그때마다 내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다정하게 건네는 눈길과 비록 능숙한 영어는 아니지만 “넌 참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연발하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땀 흘리는 글》, <죽비 같은 인연> 중, 31-32쪽 





《땀 흘리는 글》은 나의 교직 생활에서 뿌듯하다고 말할 수 있는 보람된 일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나게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단으로 결석한 아이를 찾아가 본 적도 있고, 종업하는 날엔 아이들 한 명 한 명 찾아가 안아 주면서 감동을 주는 이별 의식을 하였고, 교실 맨 앞자리에서 보란 듯이 자해를 하려는 학생 손을 지그시 잡아 흉기를 완벽하게 거두어 소란 없이 지나가게 한 훌륭한 일들이 있었다. 교사로서 한 해 한 해를 보내면서 이렇게 조금은 훌륭한 ‘땀의 의미’를 발견하고 찾은 시간이 있어, 나 좀 괜찮은 면이 있는 교사야 하는 자부심에 용기를 갖고 매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직업이 그렇듯 교사 생활을 하면서 보람만 있지는 않았다. 학생, 학부모, 사회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작은 상처들이 모여서 마음이 굳어지게 만드는 일들도 많았다. 새내기 교사 시절에 어찌 보면 열정이 없는 듯한 선배들의 모습에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했는데, 봉달호의 <웰컴 투 헬 편의점>을 읽고 나니 나도 연차가 쌓여 가면서 외부로부터 상처를 덜 받기 위해 점점 마음의 벽을 쌓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돈을 집어 던지는 사람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그것도 충격이었다. 현금으로 계산할 때 근무자 손에 살포시 돈을 건네주면 서로 기분이 좋을 텐데 카운터 위에 툭툭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매장 문을 덜커덩 열고 들어와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카운터 위에 휙 집어 던지며 담배 이름을 읊어 대는 손님을 마주할 때면, 나도 담배를 꺼내 그 사람에게 휙 던지고 싶어진다.

-《땀 흘리는 글》, <웰컴 투 헬 편의점> 중, 55쪽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갈 좋은 세상 

요즘 들어 세월이 자연스럽게 주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몇몇 학교에서 근무하고서 경험으로 얻게 된 교훈이다. 사람은 다 자기 밥그릇이 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된 제자들이 각자 삶의 터전에서 다양한 직업을 얻고 일하고 있다. 제자들이 학생일 때는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에 겁이 나고, 답답한 마음이 들어 채근했는데, 그건 아이들이 소위 말하는 괜찮은 대학을 못 갈 것 같아서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거나 뭔가 고생스러운 일을 하면서 살게 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가장 흔하게는 회사원으로, 사육사로, 간호사로, 트레이너로 다들 나름대로 직장을 잡아 살고 있었다. 이를 보고 나니, 아이들을 볼 때 마음이 어느 정도 여유로워진 면이 있다. 


그러다

매일매일 출근해 / 바닥을 견디는 것 / 자신을 견디는 것 -《땀 흘리는 시》, <투명 고양이>(안현미) 중, 86쪽 

김 대리는 네모반듯하게 건물 속으로 들어가

차곡차곡 쌓인다 날마다 김 대리의 자리는 한 블록씩 깊어진다

-《땀 흘리는 시》, <김 대리는 살구를 고른다>(임경섭) 중, 98쪽 


모든 직업인이, 직업인이 된 제자들도 그렇고, 사실은 쉽게 표현하면 많은 노동자가 이렇게 일상을 견디며 살고 있겠지 싶다. 사실 처음에 《땀 흘리는 시》(김선산 외 3인 엮음, 창비교육, 2020)를 집어 들고 엮은이 말을 읽을 때만 해도 위의 두 시처럼 일상적으로 일을 하면서 겪는 느낌이나 성찰 혹은 노동하면서 겪게 되는 견딜 만한 일상에 관한 시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어딘가 불편하고 아픈 상황과 더 많이 마주해야만 했다. 심지어, 분명히, 2000년대 이후의 시를 모았다고 했는데 말이다. 


밥을 먹기 위해 써야 하는 이력서, 만류하는 가족들도 외면하고 오르는 굴뚝, 처자식이 브레이크인 5톤 트럭 기사, 빵집 아르바이트생, 장례식장 미화원…

-《땀 흘리는 시》,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세계 산재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송경동) 중, 75쪽 


구의역 사고를 보며 이런 일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것에 놀라며 설마 또 이런 사고가 있겠냐고 할 때 신문 지상에 여전히 오르내리는 산재 사고들을 보면, 아직도 우리가 이렇게 후지게 살고 있나 싶다. 소위 노동환경 면에서 우리가 노동자로서 견뎌야 하는 일상이,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 목숨을 담보로 한 대우라면,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누구나 밥그릇이 있어, 괜찮다고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을 사회로 내보내지 못할 것 같다.


우리는 성장하면 누구나 일을 하게 된다. 학생들도 모두 노동자가 되는데, 노동자가 정당하게 일했다면 그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이 아닌가. 《땀 흘리는 글》에서도 “노동, 그 자체는 우리의 생명을 지켜 주는 신성한 행위임이 분명하지만,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고 했는데, 노동자가 애쓰고 땀 흘리고 일하고 나서 마음 편히 쉬고 놀 수 있는 ‘좋은 세상’은 아직도 먼 건가. 


그러니 중요한 건 바느질, 모두 수작업을 한다

지구의 백팔 번뇌가 여기에 있다

메이저리거 류현진의 공이 계산된 제구력에 따라 회전을 할 때

아이티나 코스타리카의 어느 시골 마을

일당 벌이 바느질을 한 소년의 빈혈을 앓는 하늘도 따라 같이 돈다

-《땀 흘리는 시》, <야구공 실밥은 왜 백팔 개인가>(손택수) 중, 58쪽 


야구공을 보며 아이티 시골 마을 소년의 노역을 걱정하는 시인의 감수성은 내가 따라갈 수 없지만, 그 시를 읽음으로써 누군가의 고통을 인지하는 것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나 또한 같은 노동자로서, 한 사회의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갈 좋은 세상’을 고민하는 시를 읽음으로써 지속해 보아야겠다. 이제까지의 노동시가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통과 슬픔이 담긴 ‘눈물’ 흘리는 시였다면, 앞으로 세상에 나올 노동시는 노동자들의 성찰과 보람이 담긴, 시집 이름 그대로 ‘땀’ 흘리는 시가 되었으면 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해 본다. 




글쓴이 소개

커피만이 유일한 취미였으나 펭수에 빠져 행복을 느낍니다.

큰 키만큼 마음도 크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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