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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Oct 13. 2020

하나의 붕대로 연결된 여성들, <붕대감기>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여러분은 가장 친한 친구나 동료에 대해 잘 알고 계시나요?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이 여러분과 얼마큼 어떻게 다른지 잘 알고 계시나요? 아무리 오랜 시간 동안 비슷한 감정을 공유해온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사람은 매일 변화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변화하는 지점들을 항상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 그 사람의 다른 지점을 지적할 수 있을까요? 그의 단점이 눈에 들어오는 만큼 나의 단점도 그 사람에게 비춰지고 있을 것이고, 함께하는 목표가 있고 서로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는 이상 아마 납득할 수 없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서로의 속도와 방향을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소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끝내 연대하는 진경과 세연이라는 인물을 기반으로, 그들에게서 뻗어나간 수많은 여성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 다른 나이와 직업, 가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환경의 여성들은 방향과 속도는 조금 다를지라도 전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바로 여성의 삶에 대한 고민입니다. 윤이형 작가님의 <붕대감기>는 지금 대한민국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인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라기보다는 이를 주제로 했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여성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말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은 진경과 세연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들이 각자 알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조망합니다. 진경의 아이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학생의 어머니, 그 학부모가 다니는 미용실의 직원의 이야기까지 연달아 흘러가는 형태입니다. 10대부터 50대까지, 학생부터 교수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의 여성들이 등장해 각각의 삶에서 알게 되고 느끼는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당연하게도 각각의 삶이 다양한 만큼 그들의 페미니즘은 균일하지 않습니다. 전부 조금씩 다른 방향과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의 중심 관계가 되는 진경과 세연만 봐도 제법 다른 삶의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세연은 비혼자이고, 화장기 없는 짧은 머리의 일명 탈코르셋을 실행한 모습입니다. 출판사에서 여성들의 우정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는 일을 맡고 있는 등, 자신의 일에 충실한 모습도 보입니다. 반면 그녀의 고등학교 친구인 진경은 기혼자이고, 세연의 눈에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진경의 삶이 그녀와는 사뭇 다른 성격인 것처럼 보입니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해미와 지현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미는 남자 친구의 외모를 애써 변명하고 아름다움과 여자를 연결 짓는 사고 회로를 가진 사람이고 지현은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 나가면서 미용이라는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통해 봤을 때, 이들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 우린 결국 같이 가야 하고 서로를 도와야 해.”


<붕대감기>에는 이렇게 달라 보이는 수많은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들이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전부 여성이고, 페미니즘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만 결이 너무 달라서 그들이 결국에는 같은 버스에 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아주 불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삶만 보지 않고 전체를 주목할 수 있는 작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들은 결국엔 같은 버스에 타 있는 존재입니다.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도 있고, 버스가 잘 굴러가도록 점검하는 사람도 있고, 그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버스 밖의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맡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각자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조금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 결국은 같은 버스에 타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서로가 다르기 때문에 부딪히게 되지만, 어찌 되었든 같은 버스에 탔으니까 상처 받을 준비를 마치고 계속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 거예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답니다. 저는 페미니즘이라는 주제에 대해 내면에서 혼란을 겪고 있거든요. 고등학생 때는 작중 세연이 인터뷰한 10대 학생들처럼 세상을 다 뜯어 바꾸고 싶었어요. 학교 도서관에서 유명한 페미니즘 도서를 빌려 읽고, 친구들과 독서실 계단에서 자정까지 불평등에 대해 말하며 열을 냈어요. 선생님과 동급생들이 내뱉는 차별적인 표현을 전부 지적했고 명절에는 할머니 댁에서 여자들만 주방에서 밥을 먹는 관습에 대해 어른들에게 격분했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면서 저는 조금 지쳤던 것 같아요. 아무리 열을 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제가 옳다고 느끼는 일을 말했을 뿐인데 그저 예민한 사람이 되어갔거든요. 더 이상 탈 것이 없어져 재가 되어버린 것처럼 발화를 멈추고, 도저히 넘기기 힘든 것들에만 조용히 힘을 다하면서 지내게 되어버렸어요. 그러던 와중 함께 독서실 계단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 중 하나는 머리를 짧게 밀고 나타났고, 다른 친구는 화장품을 좋아하는 코덕으로 진화한 근황을 전해왔습니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사이에 낀 저는 친구들의 갈등을 온몸으로 겪게 되면서 더욱 지쳐갔어요. ‘둘 다 불평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 동일한데, 외형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거든요. 그와 동시에 ‘남성복을 즐겨 입으면서도 긴 머리를 유지하는 나는 과연 자격이 있는 걸까?’ 하는 고민을 했답니다. 더하여, 작품 속 지현이 ‘미러링’을 어려워하는 것처럼 저도 페미니즘의 선봉에 선 친구의 거친 언어를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머리로는 그 행위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제법 어려운 일이었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친구를 보면서 ‘어쩌면 버스에 탈 수 있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는 버스에 발만 걸쳐 놓고 있다가 달리는 버스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거든요. 


“같아지겠다는 게 아니고 상처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거야. 상처 받고 배울 준비가 되었다고.”

<붕대감기>에서는 이러한 저와 제 친구들의 고민과 갈등하는 모습을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남자 셔츠를 입으면서 머리를 기르는 저는 과연 어디에 와 있는 것인지, 그리고 쉬폰 블라우스와 색조 화장을 즐기는 친구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친구를 서로 어떤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책을 읽는 여러분 모두가 함께 느끼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은 현재 여성들 사이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갈리고 있는 와중에, ‘완전히 달라 보이는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최근 페미니즘 이슈를 여성들 간의 갈등과 혼란, 그리고 끝내는 연대하는 과정을 통해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어떤 자세와 태도가 필요한지, 그리고 상처 받을 준비가 된 우리가 계속해서 결국은 서로 연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자기 삶에 대해 말하는 다양한 여성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붕대감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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