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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an 03. 2024

치앙마이에서 보내는 애도의 시간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 근교 '람빵'여행을 마치고 치앙마이로 돌아오는 기차 안. 뭐에 홀린 듯 책 한 권을 빠르게 다 읽어버렸다.


람빵-치앙마이행 기차 안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인해 유튜브 강의 영상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박우란 상담사님의 신간 '애도의 기술'이다.


사실 이 책을 두고 '명작이에요, 최고예요!'라고 말하기는 약간 부족한 느낌도 있다.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 너무 어려운 문장이 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무엇이 애도인지'에 대해 책 어디에도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상담사님이 의미하는 '애도'란 자신의 불편한 감정 상태에 대해 이해하고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과정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거리는 것을 넘어서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나 자신의 불편한 진실까지도 대면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내가 피해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든가 나는 찌질한 사람에 고통에서 쾌락을 느끼고 있었다든가 하는 모습)


책에는 상담사님을 찾아온 내담자들이 심리분석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애도하고 다른 차원의 감정 상태로 변화한 이야기가 나온다.


타인의 사례를 나에게 대입해 보며 많은 인사이트와 교훈을 얻었고 나와 비슷한 고통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랬는지 어려운 심리학적 용어가 사용되건 말건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몰입에서 책을 빠르게 읽어버렸다.


나는 내가 부정적인 서사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너무 괴로웠다.


폭력적이었던 부모님이 나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것은 부모님 뿐만 아니라 나를 부당하게 대한 모든 이에게로 번져나가서(주로 직장동료, 상사) 누가 나를 괴롭게 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미친 사람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때로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게 한 사람들 생각만 한 적도 있기도 하다. 이 감정을 끊어내는 것은 운동 말고는 없었다. 복싱, 크로스핏 같은 고강도 운동을 주 5회씩은 꼭 했다.


책의 초반부에 '애도되지 못한 감정들은 반드시 회귀한다'라는 내용이 나오고 자기 자신에게 신랄할 정도로 부정적인 말을 끊임없이 하는 내담자 재훈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분노의 이유는 상당 부분 폭력적인 어머니와의 관계에 기인한 것이었다. 3년에 가까운 상담 내내 분노를 쏟아내던 그는 어느 순간 언어에서 분노가 잦아들고 평이한 언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충분히 자신의 감정에 대한 애도를 끝냈고 이제는 그 분노의 자리를 다른 무언가를 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것은 그 감정이 제대로 애도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상담사님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나 자신에게 계속 말하고 있던 것이었구나.


나의 이야기를 주변 친구들에게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 직업인인 상담사님처럼 끈기 있게 들어주는 친구도 없었을뿐더러(당연히 그럴 필요는 없다) 그것이 얼마나 큰 민폐인지 알고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혼자서만 생각하니 생각은 계속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부모님,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은 천하의 나쁜 사람이라는 이분법을 세워서 그 안에서만 생각했다. 책에서 보니 이것은 유아기적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자라면서 세상은 이분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그 중간의 영역의 사람들도 있고 이것이 나쁘지 않은 것임을 배우게 되는데 나의 사고는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버린 것이다. (물론 나의 아빠가 정확히 이분법적인 사람이라 내가 그걸 배웠겠지만)


어쩌면 나는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을 통해서 쉽고 빠른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것은 제대로 된 방식이 아니라 '지름길'을 선택한 것이라 그 결과 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갇혀서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빠른 고통 완화를 통해 진통제를 썼다가 약에 중독된 사람 같다. 나는 타인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내가 만든 세계의 틀 안에 맞는 사람들만 좋아했다. 그 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애초에 관계를 맺지 않거나 빠르게 관계를 정리했기 때문에 주위에 남아나는 사람이 없었다.


책의 후반부에는 '좋은 해결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내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서는 실천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노동처럼 해야 한다고 한다.


오케이, 좋아, 뭐가 문제인지 알았어. 나는 내 감정에 대해 애도를 충분히 끝냈어. 이제는 삶을 변화시키고 싶어. 운동을 하자, 공부를 하자, 악기를 배우자.


이런 결심을 했으면 내가 선택한 행위를 노동처럼 반복하고 몰입해서 내 삶의 일부로 만들어야 하는데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작심삼일로 끝내버린다.  그러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에 쉽게 되는 일은 없는 것이다.


나는 내 고통에 충분히 애도(대면) 하지 않았고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이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쉬운 길만을 택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가이드를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해봐야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봐야지. 이제는 내 인생의 이야기에 고통 말고 다른 감정을 채워야지.


내 삶의 이야기가 결국에는 이렇게 푸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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