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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un 21. 2024

존재의 기쁨과 슬픔

#치앙마이 일년살기

오늘따라 무에타이 체육관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작은 체육관이라 수강생이 10명이 넘어가면 꽤나 북적거리게 된다. 오늘은 6시 반 수업 시간에 수강생 12명이 모였고 체육관 코치들은 수강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강생들을 3인 1조로 편성하였다. 체육관을 3개의 섹션으로 나누고 1 섹션에서는 코치와의 1대 1 수업인 패드 워크(pad work), 2 섹션에서는 하체운동, 3 섹션에서는 복근운동을 진행했다. 수강생들은 1~3 섹션을 세 번을 돌면 메인 운동이 끝나는 구조였다.


간단한 구조라고 생각했는데 섹션이 바뀔 때마다 자기 자리를 못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코치들이 도떼기시장처럼 수강생의 이름을 크게 불러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만들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다들 재밌다고 웃었다.


이렇게 체육관이 북적이면 운영진 입장에서는 잔칫날인 거라, 체육관 주인장의 아내는 연신 스마트폰을 들이밀고 영상을 찍어댔다. 이 영상은 페이스북 및 틱톡에 체육관 홍보 영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체육관이 북적이면 조금은 정신이 없고 정교하게 배우는 맛도 떨어지긴 하지만 반대로 여러 사람들의 긍정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즐겁다.


같이 운동하는 분들 중에 나보다 족히 15살은 많은 듯한 중년의 여성 분도 계신데 오늘 나에게 '오, 너 태국어 발음 좋다'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칭찬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서 태국어를 10개월쯤 배우는 중이라고 나도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군인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체형이 만화에 나올 것처럼 두텁고 땅땅한 조Joe라는 이름의 태국인 친구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다 죽어가는 얼굴을 했지만 어떻게든 수업을 따라갔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굿 잡 ( 했어)'이라고 외치며 나와 주먹을 부딪히는 손인사를 나누었다.


얼마 전부터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한 미얀마인 형제도 있다. 형제 중 한 명과 대화를 하는데 '미얀마에 있는 것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어서 태국으로 피신했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타지에서 기죽지 않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라면 상황에 매몰되어 벌벌 떨고만 있었을지 모른다.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단체사진을 찍고 해산하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 사람들도 언젠가는 다 죽겠구나.'


최근에 우울증으로 극심하게 고생하면서 죽음에 대해 집착한 결과다.


수업에는 8살쯤 된, 살면서 본 중 가장 해맑고 귀여운 웃음을 지닌 잘생긴 소년도 있었는데 이 친구의 결말도 결국은 모두와 같을 것이다.


함께 모여서 땀 흘리고 웃고 떠들며 운동한 사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쁨 그 자체였는데 이들 모두 모조리 다 결국은 죽어서 이 땅에서 사라질 운명이라는 사실은 크나큰 슬픔이기도 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나를 또다시 허무주의로 이끌 것 같아서 두려웠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이 시간은 너무도 소중했기에 이 순간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중히 기억하자는 것으로 나 자신과 합의를 보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지 않은가. 그저 순간을 즐기고 순간을 기억할 수 밖에는.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원자고, 이 원자는 우리가 죽은 후에 다른 물질로 이 세상에 남아있게 되거나 혹은 가벼운 원자는 우주로 가서 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죽음을 통해 이별은 하겠지만 어디에선가 이웃 원자가 되어서 다시 만날 수도 있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죽음이 이 생에 특별함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죽음이 존재하기에 삶을 더 특별하게 여기게 되고 삶을 낭비하지 말라는 호통도 통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철없이도 타인을 세상이 알려준 기준에 따라 평가했었다. 외모, 체형, 직업, 재산 같은 기준 말이다. 죽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너무도 강하게 뇌리에 박히게 되니 그런 기준이 얼마나 무의미 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 것보다는 함께 삶을 살면서 서로를 향해 웃어주고 힘내라고 격려해 주는 행동과 마음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게 되자,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 연락을 받아놓고 답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친구에게 바로 답하지 못한 사정을 설명하니 친구는 괜찮다고, 지금 마음은 편하냐고 나에게 물어주었다.


죽음 후 무엇이 남는지 모르겠다. 만약,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처럼 죽음 후에도 삶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거라면 나는 오늘 같은 기억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두어야지라고 생각했다.


한 번 밖에 없는 삶이니, 어차피 다들 죽으니 이제 타인을 두려워하며 타인에게 휘둘리는 일은 그만 하자는 생각도 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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