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며칠 전, 인생에서 절대로 잊지 못한 따뜻한 말 한마디를 마주했다.
말을 한 주인공은 60대 중반의 미국인 노신사다.
그는 태국어 어학원에 함께 다니는 분으로 얼마 전 반에서 다 같이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시원치 않았고 음식도, 날씨도, 참여한 사람들의 호응도 죄다 엉망이었다.
한국이었다면 대부분의 경우 잔뜩 화를 냈을 상황인데 노신사는 모두에게 고생 많았다며, 즐거운 하루였다고 말을 건네주었다. 그 말 한마디로 그날의 여정은 '시간낭비'에서 '추억'이 되었다.
그의 나이는 아빠의 나이와 비슷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아빠에 대한 기억을 불러올 수 밖에는 없었다.
기억 속 아빠는 항상 화를 내고 있었다. 60대를 지난 지금은 이전보다는 격하게 화를 내는 것은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안심이 되거나 기쁘지는 않다. 그가 30,40대였던 시절 얼마나 크게 화를 냈었는지 너무도 상세하게 기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일평생 아빠가 왜 그렇게까지 화가 났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있다면 아빠의 화를 온몸으로 받아냈어야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뇌과학자가 '화'에 대해 이야기 한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그는 인간이 화를 내는 이유를 위협과 좌절이라고 보았다.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거나 나의 예상대로 되지 않는 좌절의 상황에서 인간은 화를 낸다고 했다.
젊은 시절의 아빠는 그 두 가지 이유에 모두 해당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풍족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족을 건사해야 했던 것은 생존에 대한 '위협',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버는데 가족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좌절'이었을 수도 있다.
아빠는 종종 '니 탓이다'라고 말하며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매를 들었다.
아빠가 열심히 일을 해서 가족을 건사하는 것은 너무도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러한 분노와 폭력 앞에서 고마움이라는 감정은 길을 잃었다. 그게 어찌나 심했던지 아빠가 나를 기르는 것이 합의금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합의금을 미리 내놓고 아빠가 원하는 만큼 때리고 욕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시 미국인 노신사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을 해주었다. 비록 식사는 별로였고 날씨 때문에 좋은 풍경을 즐기지 못했음에도 여행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어학원 선생님의 노력과 반 친구들이 다 같이 함께한 사실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다.
아빠는 항상 결과만 중요하다고 했었다.
100점 만점에 90점을 넘긴 성적표를 가져와도 '100점이 아니지 않냐'며 평가 절하했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아빠의 양육태도는 나에게 고스란히 남았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스스로 엄청난 자책을 하면서 괴로움에 빠지는 소심한 인간이 되었다.
미국인 노신사와의 일화는 나에게는 세상이 뒤집힐 수준의 충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안 내네?
이런 상황인데도 모두들 고생 많았다며 즐거운 하루였다고 말을 건네네?
경험해 본 적 없는 이런 압도적인 따뜻함 앞에서 나는 화를 내는 것 말고는 감정표현을 할 줄 몰랐던 아빠가 아쉽고 가엽게 느껴졌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것도 잘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아빠의 선택이었지 나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아빠도 이런 삶이 있을 수 있었다는 걸 배우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런 아쉬움은 들었다.
아마 아빠는 지금도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감히 딸년이 나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고 집에 오지도 않아? 어디 두고 봐라, 내 앞에 다시 나타나면 절대로 받아주지 않고 실컷 욕을 해 주겠다'라고 하면서 잔뜩 벼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런 건 두렵지 않다.
그저 인간적인 연민일 뿐이다.
인간의 삶을 구원하는 건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뿐인데 그것을 모르고 산 아빠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나 자신에 대한 연민도 분명 존재한다.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 동안 아빠에 대해 생각하고 고통받은 까닭은 내 인생 그 무엇보다도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너무도 컸기 때문일 테니 말이다.
이 마음을 버리는 것 까지가 내가 다달아야 할 목표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문득 내 자신이 짠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