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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ul 05. 2024

2천바트짜리 미용실과 26바트짜리 간식

#치앙마이 일년살기

머리가 지저분하게 자라나는 것 같아서 진격의 P답게 즉흥적으로 미용실을 찾았다.


해외에 살면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것은 꽤나 불안한 일이다. 10여 년 전인가, 몰타라는 나라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머리를 잘랐을 때는 미용사의 실력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머리를 매우 짧게, 그리고 쥐가 파먹은 것처럼 잘라 놓았기 때문이다. 태국은 미용사들의 실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다만 한국에서도 나에게 맞는 미용사를 찾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것처럼 치앙마이에서도 비슷한 여정을 거쳤다.


내 머리는 숏컷으로 볼 수 있는 기장인데 반곱슬이라 여간 컷트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아예 짧은 느낌은 원하지 않아서 나름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스타일이다. 조금 기장감이 있는 리프컷 스타일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인데 태국인 미용사들은 '그냥 숏컷'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작년에 방문한 어느 미용실에서는 너무 짧게 잘라주셔서 다시 기르느라 3달 이상이 소요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올해 2월인가에 갔었던 곳이다.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뭔가 100% 만족은 아니어서 그 다음번에는 다른 가게에서 머리를 잘랐다. '다른 가게'의 미용사가 매우 불만족스러웠기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새치가 관리 불가능한 수준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에 컷트와 함께 염색도 진행했다.


치앙마이 미용실의 가격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천차만별이다. 남성분들의 경우 가장 저렴하게 머리를 자를 수 있는데 번화가가 아니라 로컬 가게의 바버샵에서는 100바트, 우리 돈 3700원이라는 아름다운 가격에 머리를 자르는 것이 가능하다. 여성이라면 이렇게까지 저렴하게 자르는 것은 불가능해서 기본 200바트 선에서 컷트 가격이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방문한 곳은 여성 컷트 500바트, 염색 기본 1500바트로 로컬 가격에 비해서는 꽤나 비싼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방문한 이유는 저렴한 곳 대비 여유롭게 미용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1인 미용실이라 한 번에 손님을 한 명만 받는데 시술 시간 동안 미용사분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손님을 둥가둥가 케어해준다. 바로 직전에 갔던 미용실은 컷트비용은 300바트였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30분이라 다음 손님을 받기 위해서 미용사가 급하게 머리 손질을 마무리했었다.



8만 원 돈으로 미용사님의 인생의 3시간을 온전히 차지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원래 태국 미용사들의 컷트 속도가 느린 편이긴 한데 이 분은 집중하느라 더 느리게 컷트를 다. 얼마나 집중을 하는지 미용사님 주위의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염색을 할 때 염색약을 다 발라놓고도 계속 내 머리를 쳐다보며 한 시도 쉬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해서 '점심식사 안 하세요?'라고 물었는데도 괜찮다며 내 머리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염색이 끝난 후에는 샴푸대에 나를 눕히고는 내 두피가 신생아 두피인양 매우 정성스럽게 샴푸를 해주시고는 서비스라며 트리트먼트 약도 듬뿍 발라주었다.


3시간의 과분한(?) 서비스를 받고 2천바트를 결제하고 미용실을 나섰다. 컷트는 무난했고 염색은 잘 되었기에 꽤나 만족스러웠고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용실의 시설은 좋은 편에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주고 염색약도 좋은 약을 쓰며 월세도 내야 할 테니 순수익이 엄청나게 남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일 최저임금 350바트를 받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태국 노동자들에 비해서는 꽤나 괜찮은 벌이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머리에 나름 거금을 투자한지라 오늘 하루는 샴푸를 하지 않기 위해 운동을 쉬고 밤에 치앙마이 대학교 정문 야시장에 다녀왔다. 코코넛을 넣어서 만든 아주 작은 팬케이크를 팔고 있길래 다섯 개를 샀다. (탄수화물 줄이기로 했는데 이 이건 참을 수 없었다)


'타올라이 카?'

얼마예요?


'이십 혹 밧 카'

26바트요


내가 이걸 '시십 혹 밧', 46바트로 알아듣고 QR결제를 했더니 젊은 여성 직원이 웃으면서 현금 20바트를 돌려주었다. 그냥 꿀꺽할 법도 한데 곧바로 남은 금액을 돌려주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꽤나 감동을 했다.


방금 전 2천바트를 별 일 아닌 듯 결제하고서는 여기서 20바트를 돌려받다니.


머릿속 돈에 대한 기준이 다소 애매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태국에 있다 보면 이런 일은 종종 겪는 일이다. 번화가의 쇼핑몰 같은 데 가면 한국만큼의 물가를 경험하고 서민들이 사는 곳에 가면 말도 안 되는 깜짝 놀랄 물가를 경험한다. 최저임금 일350바트, 한 달에 만 바트 정도 되는 생활비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대상으로는 그만큼 물가가 저렴해야만 하는 것이다. (만 바트는 제일 극단적으로 임금이 적은 예시다. 평균 급여는 만 오천 바트 정도라고 한다)


누군가는 3시간에 2천바트를 쓰고, 누군가는 일주일에 2천바트를 버는 세상.


한국에서는 이 정도의 격차까지는 체감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태국에 살면 유독 이런 격차를 크게 느낀다.


나는 그저 자신의 인생의 3시간을 오롯이 나의 머리에만 집중해 준 미용사님이나 20바트를 돌려준 가게 점원의 친절함을 기억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는 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돈을 힘들게 벌었고 힘들게 썼다. 돈을 버는 게 힘든 것은 회사생활을 해 본 그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것이다. 이렇게 벌었는데 물가는 너무 가파르게 상승해서 돈을 쓰면서도 힘에 부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지나갔다. 너무 힘들어서 소위 말하는 '시발비용'을 많이 쓰기도 했다. 술을 마시거나 비싼 간식을 사먹었다. 


치앙마이에서는 100바트, 한국 돈 3천 7백원으로 장을 보면 야채를 한 보따리 살 수 있다. 심지어 10바트, 370원이면 고구마 삶은 것 하나를 살 수도 있다. 이렇다보니 돈을 쓰면서도 한국처럼 괴로운 느낌이 덜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외국인들이 태국에서 은퇴생활을 즐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 돈이면 살아갈 수 없다며 자포자기 해버리는데 태국에서는 이 정도의 돈이여도 삶을 꾸려나가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그래서 태국이 가볍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태국이라는 나라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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