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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ul 06. 2024

장난꾸러기 친구 안녕

#치앙마이 일년살기

무에타이 체육관 코치들 중에 나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코치가 체육관을 떠났다.


2주일 전부터 갑자기 안 보여서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다른 코치에게 물어보니 방콕으로 갔다고 한다.


아니, 몇 년을 함께 했던 코치가 체육관을 떠났는데 체육관 주인장이나 다른 코치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허구한 날 Facebook에 체육관 사진과 온갖 소식을 올리는데 떠나는 코치의 안녕을 빌어주는 게시글 하나 올리는 건 어려운 건가.


어쨌거나 요즘 통 코칭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더니 이런 이유였구나,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는 나에게 매일 한국어를 배웠다.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은 아니고 하루에 한 두 단어 씩을 배워갔다. 나름 열심이었는지 나중에는 공책도 하나 사서 나에게 배운 단어를 정리하기도 했다. 영어 보다는 한국어가 쉽다고 했고 단어 몇 개를 알려주면 바로 응용도 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해외에 가는 것에 대해 종종 말하더니 일단은 대도시인 방콕으로 간 것 같다.


나는 그를 꽤나 애정했다. 킥이나 펀치의 자세가 이상하면 가장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가르쳐주기도 했고 그 무엇보다도 장난꾸러기였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도 이랬다면 부모님 속을 꽤나 썩였을 정도의 장난꾸러기다.


그의 장난은 항상 주위를 전염시켜서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아무리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 것 같아도 그의 장난을 보면서 다들 웃어버리고는 다시 운동에 집중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회사에서 꽤나 유명한 개그인이었는데, 주위 사람에게 '정말 어떻게 그렇게 웃기냐'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우울증 증상인지 뭔지 때문에 잃었던 웃음을 장난꾸러기 코치를 통해 수혈받는 느낌이었다.


태국어로 웃긴 사람을 두고 '딸록ตลก'이라고 하는데 이 친구 때문에 단어를 쉽게 외웠다. 그가 장난을 칠 때면 '딸록 딸록'이라며 응수했다.


내가 경험한 태국인들은 대부분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친해지면 더욱 그렇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장난을 치고 노는데 그 모습이 꼭 어린아이들 같다. 이번에 그만둔 코치는 장난을 먼저 시작하는 선봉장 같은 역할로 장난계의 탑티어 같은 사람이었다.


이런 그가 말도 없이 뿅, 하고 사라지고 난 후 다행히 다른 코치 한 명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원래는 뒤에서 소심하게 장난을 쳤는데 이제는 앞에 나서서 장난을 이끈다. 이 친구 덕분에 이유 없는 실소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장비를 갖추고 오버액션을 취하며 수업을 해준 코치, 장난계의 신흥강자다


말도 없이 떠나버린 코치가 야속하긴 하지만 글을 통해서라도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려고 한다. 그가 아니었으면 한 번도 웃지 않고 지나갔을 나날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아무리 삶의 무게가 무거워도 너무 진지해지지 말고 장난을 잔뜩 쳐버리고는 웃어넘기자. 그래도 된다. 그게 꽤나 효과가 있다. 이런 것을 그를 통해 배웠다.


내가 사용하는 무에타이 기술 중에 왼손 잽과 오른발 킥은 확실히 그가 만들어준 것이다. 내가 무에타이를 계속하는 한, 잽을 치고 오른발 킥을 차는 한, 나는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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