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눈발이 휘날리는 설 명절.
가족과 연락을 하지 않으며, 만으로 40세를 향해 뛰어가는 미혼 여성에, 불안장애로 치료를 받는 직장인인 나는 휘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집에 머무는 중이다.
그래도 몇 번의 지난 명절 보다는 잘 지내고 있다.
22년도 명절에는 술에 절어있었고, 23년도 명절에는 치앙마이에서 겉잡을 수 없는 불안증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24년도 명절(추석)에는 공황발작이 와서 마트에서 15분간 움직이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집에 돌아 와서는 자살사고에 사로잡혀 엉엉 울었다.
그 이후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고 25년도 첫 명절에는 약을 먹으며 증상을 잘 조절하는 중이다.
술을 끊지 못했더라면 기나긴 이 명절 기간은 혼자 집에서 술에 취하고 깨고 취하고 깨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22년도 명절에 그래본 경험이 있다)
그렇지 않은 것만 해도 참 감사해야지. 지금도 그러고 있었다면...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다만 그렇다고 모든 게 좋은 것은 아니다.
2주 전 즈음에는 A형 독감 확진판정을 받아 일주일 내내 사경을 헤맸다.
아니, 코로나보다 더 아프더라니까.
하필 증상이 제일 심하게 온 날 제안서 작업을 급하게 할 일이 있어서 새벽1시까지 회사에서 일을 했다. 이미 오후 3시 정도부터 몸이 안 좋아서 근처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고 괜찮아졌다 아팠다를 반복하며 일했다. 밤이 되자 온 몸에서 오한이 느껴져서 온 몸을 벌벌 떨면서 PPT 작업을 했다. 여기에 어지럽고 토할 것 같은 증상이 더해져서 버티고 버티다가 새벽 1시에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집으로 가는 30분 동안 택시에서 오한과 구토를 참으면서 속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꾸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억지로 컨트롤했다.
그 다음날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다시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병원에 가니 A형 독감이라고했다. 링거로 치료제를 맞았는데도 3일을 더 앓고서야 겨우 회복했다.
독감을 앓은 주, 그 앞 뒤로도 안 좋은 곳이 많아서 '내 인생에 이렇게 병원에 많이 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병원에 다녔다.
끝없이 보험 서류를 작성하며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다.
여기를 치료하면 저기가 아프고 저기를 치료하면 또 여기가 아픈 수준이었다.
지금도 이런데 이제는 점점 안 좋아질 일만 남은 것이 아닐까??
다행히 설 연휴에 하루 빼고 문을 여는 헬스장을 찾아 지난 주말부터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에 꾸준히 다니던 무에타이 체육관은 연휴에 문을 안 열고, 최근 독감으로 완전히 체력이 방전되어서 무에타이를 다닐 여력도 없다. 헬스장에 나가서 그나마 운동을 조금이라도 하니까 부정적인 생각이 극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지금 글을 쓰는 것도 부정적인 생각을 해소하기 위한 일환이다.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으려고 병원에 다니며 아픈 곳을 고치고,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약도 먹는다.
뭐라도 한다.
글을 쓰다 보니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고장이 나면, 계속해서 고쳐야지. 별 수 있나.
아프니까 낫기 위해서 의사들에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 여기 저기 뛰어 다녔다.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는 거 아닐까.
하루 하루 나아지려고 뭐라도 하는 것 만으로 족한 게 아닐까.
뭔가 대단한 것을 해야만 가치 있는 삶인 것이 아닌 게 아닐까.
방금 본 법률스님의 강연에서 '삶에 뭐 딱히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사는 거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씀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
다만 평생을 '뭔가를 해야만 가치 있는 삶'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서 그러한 일종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프고, 그 아픔에서 낫기 위해서 하루 하루 뚝딱 거리면서 아픈 곳을 고치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