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지난번에 쓴 글이 벌써 20일 전의 글이다.
지난번 글을 쓰고 나서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정신과 정기검진이 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약의 용량을 높여서 처방해 주셨다.
낮에 먹는 비상약에 손을 대고, 밤에 회사 스트레스로 잠에 쉬이 들지 못하고, 자기 전 심장떨림 증상이 오래 지속된다는 말을 듣고 용량을 늘려준 것이다.
선생님에게 나의 증상을 상세히 말하는 것이 꽤나 중요함을 느꼈다. 그는 기존과는 다른 신경안정제를 쓰는 등 내 증상에 맞는 약을 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에게 맞는 약이 다 다르다고 하는데 이번에 처방받은 약은 세 번째로 다른 약이다. 다행히 딱히 부작용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 전 심장떨림 증상도 많이 가라앉았다.
신경정신과 약을 먹는 것은 회사 생활, 즉 내가 외부에서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크나큰 도움이 된다. 약이 없었다면 회사에서의 나는 고슴도치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예 몸의 모든 스위치를 꺼버리는 느낌이라서 집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더 기운을 낼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심지어는 휴일이 싫고 회사 출근을 기다린다는 생각까지도 한다.
회사에서의 나는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일해도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는 느낌이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스위치가 내려가듯 모든 게 꺼져버린다.
아마 나는 지독한 애정결핍이고 이러한 애정결핍 증상을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회사에서의 나는 정리가 안 된 일을 정리하고 누군가를 돕고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겉으로 티는 잘 안 내지만 속으로는 그런 인정이 좋아서 머리가 아파오는 지경이 되어도 지독하게 내 일을 다 끝내고 퇴근한다.
나 자신은 돌보지 않고 일만 돌본다.
그러나 불안증상이 심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상황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죽고 싶다든가 분노로 인해 머리가 돌아버린다든가 폭음을 한다든가의 일은 전생의 일처럼 까마득하게 멀게 느껴진다. 아마 고작 2년 전 즈음의 내가 그랬는데.
하나씩 풀어나가야지 뭐 어쩌겠는가 싶다. 모든 걸 한꺼번에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다.
술도 끊고 새로운 업무에 적응도 했고 정신과도 꾸준히 나가고 있으며 주 3회 정도는 운동도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일이다.
적응에 힘들기는 했지만 치앙마이에 있다가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상황이 더 좋아졌다. 나는 하는 일이 없이 혼자 고립된 환경에서는 외부로부터 애정결핍을 충족할 길이 없어서 불안함에 더 깊게 몰입해서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누군가는 나를 두고 이렇게 일하면 주위로부터 '워커 홀릭'이라는 말을 듣고 그것이 내 이미지가 되어버려서 결국에는 나에게 부정적인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 충고하기도 했다. '원래 저 사람은 저렇게 일해'라는 이미지가 박혀버려서 사람들이 내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아니, 나는 일을 해야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일 뿐이다. 내가 빠진 게 술이나 기타 다른 향정신성 물질이 아닌 것이 어딘가. 일을 해야 집중도 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덜 하고, 애정도 충족하고, 규칙적인 생활도 가능하다.
이렇게 더 나아질 방법을 찾았으니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업무적 인정 없이도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할 것이다.
24년,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한국으로 귀국해서 업무로 복귀하고,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