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오랜만에 크로스핏을 시작하며, 적응을 위해 5일 연속 운동을 했다.
눈을 못 뜰 정도로 힘들어서 운동 이외에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약간의 산책, 집 청소, 넷플릭스 시청뿐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누워서 골골 거리며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제로데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전설적인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마피아 두목이 아닌 미국 전직 대통령으로 나온다. (신사 같은 분위기의 이 양반이 워낙 마피아 연기를 많이 했어야지...)
드라마는 5점 만점에 2.5~3점 정도 줄 수 있었는데 '하우스 오브 카드' 정도의 명작은 아니어도 볼만은 했다.
미국에 갑자기 사이버 테러가 발생해서 전직 대통령인 로버트 드 니로가 관련 수사를 이끌어 나가는 내용이다. 주인공 보다 주인공의 주변 인물에 더 공감을 하며 봤다.
특히 이 남성에 많은 공감을 했다.
Jesse Plemons라는 배우로 가장 최근에는 블랙 미러라는 유명한 드라마 시리즈에서 인상 깊게 본 배우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정치 욕심이 크지만 정치판에서 밀려나 있다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복귀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주인공이 매우 총애하는 수행비서다.
그를 두고 주위의 인물들은 '다시 중요한 인물이 된 것 같아서 좋냐?'는 조롱을 하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상세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대통령과 함께 중요한 일을 하던 그가 대통령 퇴임과 함께 스포트라이트에서 밀려난 것에 대해서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라에 닥친 비극 덕분에 그는 다시 스포트라이트 중심으로 돌아와서 바쁘게 국가 중요 인물들의 연락을 조율하고 전직 대통령인 주인공 로버스 드 니로를 보좌한다.
이 인물을 보면서 왜 이렇게 내 모습이 겹쳐 보였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랬다.
나도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중요한 결정을 위해 정보의 중심에 있는 것이 좋았다.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나의 개인 생활을 포기했다. 중요 의사 결정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했기에 팀장보다도 더 많이 일했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하고, 집에 돌아오다가 몸이 안 좋아서 지하철에서 뛰어 내려서 화장실에서 구토하고, 주말에는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하면서도 일을 하는 것에 매달렸다.
결국 이 인물은 권력을 탐한 값을 톡톡히 치른다.
내가 탐한 것도 결국은 권력이었을까?
그런데 그 권력이라는 것이 실체는 있는 것이었을까? 나를 희생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권고사직을 당한 덕에 최근에는 날씨 좋을 때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흐드러지게 핀 꽃구경도 한다.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욱여넣고 사무실로 들어가서 정신 차리면 날이 저물어있는 일도 없다.
드라마의 이 남자도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것은 노력으로 끝난다.
미국 정치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참 자기중심적인 감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