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치앙마이
'송송당님은 속에 맺힌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춰내고 공유하는 게 중요해요'
10회 넘게 이어지는 심리 상담에서 최근 상담사님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다. 나는 내 입장에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차단된 환경에 있었기에 이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름의 이해를 했다.
백수가 된 이후 이상하게도 새벽 6시 정도면 알람 없이 잠에서 깨어난다. 보통 같았으면 오후 1시에 깨도 이상하지 않은 나인데 왜 계속 일찍 깨어나는지는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마도 최근 시작한 크로스핏이 너무 힘들어서 평소보다는 수면의 질이 좋아진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다. 그래도 새벽 1,2시에 자는 것이 허다한데 6시에 깨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어쨌건, 갑자기 미라클 모닝이 가능한 몸이 되어버렸으니 이 기회를 활용해 새벽 시간에 책이라도 읽자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작품이다.
노벨문학상 작품이 전부 나에게 감명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번역본이 아닌 한국어 감성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사실 한강 작가는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매우 좋아하는 작가여서 책을 선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왜인지 나는 선물 받은 책에는 도통 손을 대지 않았었다. 친구가 준 책을 읽어볼 여유도 없던 시기였다.
한강 작가의 책을 드디어 읽기로 마음먹은 오늘, 방금 단편 소설인 채식주의자를 빠른 호흡으로 읽어냈다. 내용을 곱씹기 위해서 몇 번을 더 읽어볼 것 같은데, 첫 시도에서는 소설 특유의 서늘하고 무서운 분위기 덕분에 뒤에서 귀신이 쫓아오는 것처럼 와다다다 읽어버렸다.
왜 이렇게 서늘하고 무서운 분위기일까?
당연한 해석이겠지만 주인공에 대한 가족, 사회의 분위기가 표현된 것이라고 느꼈다.
주인공은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만으로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폭력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미동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의 강도를 높여나간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도 떠올랐다.
채식주의자 단편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이지만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의 대상을 상징한다고 느꼈다. 그녀는 여성으로 표현되었으나 남녀노소 모두로 치환될 수 있다.
'친절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생물학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사회성이 높은 개체들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로 개들도 인간에게 친절하게 진화하였다. 하지만 인간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타집단(외집단)'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배척하는 폭력성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인간은 '타집단'이라는 이유로 같은 인간에게 대량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 생명체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나와 다르다는 것'은 사회의 화합과 안전을 저해하는 공포의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부모님으로 대표되는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것으로 인해 몇 년간 불안장애를 앓아오는 사람으로서 소설의 주인공에게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부모님도 정도가 달랐을 뿐 나에게 무수히 많은 회유와 협박, 폭력을 행사했다. 반항을 하면 부모에게 못되게 구는 나쁜 딸이 될 뿐이었다. 그 나쁜 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오랜 시간을 신음했다.
가족을 벗어나 사회에서라도 나의 안식처를 찾으려 해 봤는데 회사로 대표되는 사회 역시 부모님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부모님, 회사 모두 나에게 'KPI'를 요구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만 집단에 속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웃긴 것은 부모님도, 회사도 요구하는 KPI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것'이라고 느꼈다는 것이다. 남들 하는 걸 군말 없이 하기만 해도 별 문제는 없었을 텐데. 나는 군말이 너무 많았다.
한강 작가의 소설은 그 군말을 문학작품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일종의 대리만족 같은 것을 느끼며, 대리만족이 아니라 내가 그 만족감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