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환자의창업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신과에 방문했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한다.
치앙마이에서 일년살기를 하고 돌아오자마자 들른 병원이었는데 일 년째 다니는 중이다.
처음 왔을 때는 젊은 정신과 의사 앞에서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울었는데 이제는 제법 멀쩡하게 내 증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의 내 증상은 불안해서 음식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창업준비를 하기 위해서 팀을 꾸려서 앱을 만드는 중인데 회사 다닐 때에 버금가는 온갖 불안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공동 창업자와는 몇 번의 다툼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그녀의 태도가 변한 것이 느껴진다.
내가 '훈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그녀는 이제 나에게 거리를 둔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HSP(Highly Sensitive Person)인 것이 분명한 나는 타인의 감정 변화를 민감하게 느낀다.
얼마 전에는 정부 지원사업에 신청한 것도 떨어졌다. 명확히 나의 담당이었던 일이다.
이 모든 것을 자책하는 나는 불안감을 견딜 수 없어서 쉬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
엄청 과한 것을 먹는 것은 아니고 바나나 먹고, 녹차 마시고, 점심 먹고, 참외 깎아 먹고, 과자 먹고 이런 식으로 조금씩 먹는 것을 쉬지 않는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아주 잠시나마 나에게 위로가 된다.
글을 쓰는 와중에 내 차례가 되어서 진료를 받고 나왔다.
원래 자기 전에 한 번만 약을 먹지만 선생님은 낮 시간 동안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아침에 먹을 추가 약을 처방해 주셨다. 약을 받고 보니 한 달 치 약이 두 손에 한가득 담겼다.
약을 먹고 불안해서 음식을 먹는 증상이 잡힌다면 그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다.
인간의 몸이 꼭 기계 같다는 의미가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약을 먹고 불안해서 음식을 먹는 증상이 잡힌다면 그것은 참 다행인 일이다.
자포자기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팀원들과의 관계는 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실수도 할 수 있고 잘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다음 주에는 문제가 뭐였는지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볼 생각이다.
내가 싫어했던 직장 상사나 대표 같은 모습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심지어 어제는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지만 그것도 잘 이겨내 볼 생각이다.
나의 감정이라는 것에 지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