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최근들어 낮에도 불안한 강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원래 낮시간은 이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병원에서 낮에 먹는 약을 추가하기는 했는데 썩 효과가 좋지는 않다.
발 끝에서부터 불안한 감이 올라오고 뱃속이 불편하다.
불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조금씩 계속 먹는다.
먹는다는 행위는 확실히 불안에 도움이 된다.
다만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사라졌다.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 먹을 것을 쑤셔 넣는 기분이랄까.
얼마 전에는 갑자기 어렸을 적, 그러니까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까지 세들어 살던 집의 주인집 아들녀석이 떠올랐다.
아직도 이름이 기억나는 그는 우리와 자주 어울려 놀았다.
골목에서 흔히 보이는 갈색 벽돌로 지은 빌라에서 처음에는 지하에 살다가 사정이 좀 나아진 후에는 2층으로 이사를 갔다. 한 집에 오래 살면서 집주인, 세들어 사는 다른 이웃집 아들들과 많이 어울려 놀았다.
그러다 우리집은 집을 사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원래 살던 곳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고 낡은 아파트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빌라에 살다가 아파트로 가는 것은 나름 장족의 발전이었으리라.
그러던 어느날, 이사간 집에 같이 어울려 놀던 주인집 아들이 찾아왔다.
자전거를 타고 온 것 같았다.
그의 표정에는 그리움,아쉬움, 여기까지 찾아온 것에 대한 민망한 같은 것이 배어 있었으나 우리는 그녀석을 딱히 반기지는 않았다.
같이 어울려 놀기는 했지만 집주인 아들과 세들어 살던 집 자식이라는 나름의 거리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딱히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그녀석은 다시는 우리집을 찾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대체 얼마나 지났을까? 족히 25년은 지났을까?
왜 갑자기 그 소년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때 그 소년의 얼굴은 친구를 찾아서 먼 길을 온 표정이었고 우리를 그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우리집을 찾아온 행위는 애정을 갈구하는 행위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도 그런 것일까?
극심한 불안감을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 버티는 나 역시도 결국 원하는 것은 타인의 애정인 것인가.
그 때 내가 그 친구를 반겨주었다면 어땠을까, 어린 소년의 마음이 조금은 채워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계속 그랬다.
나에대한 사랑이 없어서 타인도 사랑하지 못했다.
나는 계속 사람들을 밀어냈다.
덕분에 생존력 같은 것은 늘어났지만 결국 남은 것은 불안장애 뿐이다.
지금의 불안장애도 다 이유가 있어서 겪고 있는 것이겠지...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지만 대체 나의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는 한치 앞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