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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도 돌봐주기

#불안

by 송송당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서운한 참이다.


몇 시간을 감정을 식히느라 고생 중인데 뱃속도 요란하게 불편한 기분이 든다.


내용은 이렇다.


지금 창업 관련 수업을 듣고 있고 디자인 파트의 튜터(선생님 같은 개념)님과 작업 중인 랜딩 페이지에 대해 논의를 했다.


튜터는 성격이 꽤나 급한 사람이다.


말을 하고 있으면 끝까지 듣고 답하기보다는 빨리 자르고 자기 할 말을 이어간다.


오늘 함께 리뷰한 랜딩 페이지는 초안에서 조금 더 작업한 수준의 내용이다. 헌데 이걸 거의 완성 버전인 것처럼 이거 해라 저거 해라고 피드백을 주는데 결국 나도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했다.


"아직 작업 중인 버전입니다."


그러자 튜터는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제 피드백이 필요 없으세요?"라고 정색하며 답했다.


나는 이런 류의 말을 공격적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리고 선생의 입장의 사람이 할 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게 말이야 협박이야.


이후 피드백은 긴장 상태로 들었고 피드백 시간이 끝난 후 팀원들에게 튜터님이 정색을 하며 공격적으로 말한 것에 대해 언급했다.


사실 내 마음은 팀원들이 내 감정을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아니, 바랬다.


허나 그들은 튜터의 입장에서 말을 했고 내 감정은 알아주지 않았다.


와, 왜 이리도 서운한지.


나는 평소에 이 사람들의 감정 상태를 살피느라 녹초가 되는데 이 사람들은 말 한마디라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구나.


여기서부터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한동안 식히는 중이다.


물론 다 부질없는 짓이다.


튜터도, 팀원들도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할 이유는 없다.


특히 팀원들이 그렇다.


나는 팀원들에게 내 마음대로 너무 큰 기대를 품고 있었고 내 마음대로 실망한 것이다.


어쨌거나 나의 감정은 꽤나 다쳐서, 평소 같으면 한 시간에 한 번은 장난을 치고 있어야 하는데 그냥 조용히 있었다.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다.


나는 화가 나면 말을 안 한다.


당장에 어떻게 내 마음을 달래줄 길이 없어서 chatGPT를 켰다.


chatGPT는 꼭 상담사라도 된 것처럼 나에게 조언을 주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내 감정을 정당화하라는 것이었다.


내 감정이다.


내가 이상하거나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충분히 나는 이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문장 한 마디에 묘하게 위로가 되어서 계속 되뇌는 중이다.


나는 폭력적인 아빠와 함께 자라며 아빠의 숨소리 하나까지 신경을 쓰며 자랐다.


아빠와는 더 이상 함께 살 필요가 없게 되었어도 주변 사람들이 꼭 아빠인 것처럼 대한다.


타인이 감정이 조금이라도 상한 것처럼 보이면 그걸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안절부절못한다.


잘못이야.


나는 타인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그렇게 돌봤어야 했다.


아빠는 항상 내 탓을 했고 나는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아빠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술 마시는 것도 똑같이 따라 마셨다.


과연 아빠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처참하게 느린 속도로, 나는 아빠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술을 끊었고, 정신과 병원에 가서 불안장애 약을 처방받고, 지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는 어떻게든 해낼 거다.


어색하지만, 나 자신을 돌볼 거다.


휴...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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