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

#불안장애

by 송송당
병원강남.jpg 강남의 정신과 병원 로비에서 바라본 모습


어쩌면, 다음 달 정신과 진료에서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금주를 한지 어언... 2년이 넘은 상황. (세어보니 8백 몇십 일이다)


그동안은 술에 대한 생각 같은 건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최근은 술 생각이 나더니 어제는 술을 사겠다는 마음을 품고 집 앞 편의점에까지 가기에 이르렀다.


나는 위스키가 진열된 장을 천천히 살펴보았고, 다행히 위스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숙취 같은 느낌이 올라와서 술 대신 제로펩시 세 개를 사 들고 올라왔다.


2년 간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유인 즉 그냥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기절해서 시간을 보내다가 출근을 하고 싶었다.


뭔가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다.


그나마 회사에 가면 일이 많아서 시간이 잘 가기에 회사에 다니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삶이람.


부모님에 의해 억압된 생활을 했을 때는 부모님만 방어하면 되었으니 차라리 이런 일은 없었다.


부모님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음주, 격한 운동, 여행 같은 방식으로 나에게 쏟아냈고 적어도 심심할 틈은 없었다.


완벽한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에게도 벗어나고 혼자 생활을 하며 술도 마시지 않으니 정작 하고 싶은 것이 없다.


꿈같은 게 없다고 해야 하나.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물론 꿈이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에게 나를 맞췄다.


공부를 잘하라 그래서 잘했다.


부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만이 목표다 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건 내 인생에 너무도 큰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한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부모님이 하라는 것에는 격렬히 반항했다.


이건 뭐지?


공부를 잘하라는 것까지는 나도 수긍해서 따랐지만, 그 이후의 것, 부모님이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님이 원하는 시간에 집에 가서 부모님의 수발을 드는 것은 수긍하지 못해서 따르지 않은 것인가?


결국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부모님 탓을 할 것이 아니었구나.


신경안정제를 먹고 잠이 드는 나날들, 종종 부모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꿈에 나온다.


깨고 나면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부모님 꿈을 꾼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운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내 무의식 중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형식으로 부모님이 남아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아마 부모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뭔가 끝맺음(만나서 대화를 나눈다거나)을 맺어도 해결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나의 무기력은 남 탓을 하지 말고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더욱더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나 자신을 하나하나 분해해 가면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 효과가 있었던 것은 치앙마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운동을 했던 삶의 방식이다. 그때는 몸 상태도 좋았고 약 없이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곳을 바로바로 갈 수 있었던 것도 긍정적인 요소지 않았을까 싶어서 면허를 따고 차를 사볼 생각도 하는 중이다. (2종 소형 면허만 갖고 있는데 서울에서 오토바이 운전을 했다가는 일찍 죽을 것 같다)


어제, 편의점 술 장식장 앞에서 들었던 그 술을 마신 뒤의 숙취 같은 느낌을 기억하고는 다시는 술을 사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삶은 소중하고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로 없애버리기에는 소중하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이 듦을 이해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