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일 년을 보내기 위해 마음에 드는 오토바이를 중고로 구매한 후, 아주 우연히 오토바이의 주행거리가 조작된 증거를 발견했다.
증거를 발견하고 바로 다음날 중고 오토바이 가게에서 오토바이를 10% 공제 후 다시 구매하겠다는 답변을 을 받았고 10일이 지나 모든 일을 마무리지었다.
아름다운 미소의 나라 태국. 많은 여행자들이 태국을 여행하며 따뜻한 미소와 친절함에 감명을 받고 돌아가지만 이곳도 엄연히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 돈 앞에서는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중고 오토바이의 주행거리 조작이 기승을 부리는 것처럼 이곳도 그렇나 보다. (오토바이 주행거리 조작하는 기기가 태국에서 수입된다는 소리도 있다...)
가게에서는 자신들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했지만 동시에 곧장 오토바이를 반납하라며 은근한 엄포를 놓기도 했다. 주행거리가 조작된 오토바이의 소유권을 다른 사람에게 이전하고, 내가 다른 오토바이를 다시 구매하기 위해서는 '거주지 등록증'이라는 서류를 신규 발급받아야 했는데 가게에서는 서류가 언제 되냐며 독촉했다.
만약 본인들이 정말 주행거리 조작을 몰랐고, 나에게 미안했다면 이런 독촉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자신들이 판매하는 다른 오토바이를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을 것이다.
사기는 내가 당했는데 오토바이 반납은 언제 할 거냐는 독촉을 받는 이상한 상황. 다행히 서류가 나름 빠르게 발급이 완료되어 사건 발생 10일 시점의 오전에 새로운 오토바이를 구매하고, 구매 즉시 중고 가게로 가서 오토바이 재판매를 완료했다.
문제의 오토바이를 재판매하기 위해 가게에 들른 길. 가게 주인 커플 두 명은 그 어떤 동요도 없이 나를 맞이하였다.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나에게 필요한 서류를 받았고 곧장 통장으로 기존 판매 대금에서 10%를 공제한 금액을 입금해 주더니 그것으로 끝.
이 모든 상황의 처리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도, 내 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시 가져온 오토바이의 상태를 체크하는 일도 없었다.
이로써 나는 이들이 오토바이의 주행거리 조작을 몰랐다고 한 말이 거짓말임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이들의 표정, 분위기, 제스처, 행동은 확실히 잘못이 있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더군다나 태국인들은 자존심이 매우 세다고 하지 않는가. 본인들의 과오가 들킨 것이 매우 쪽팔리는 모양새였다. 입을 앙 다물고 굳은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아니, 사기는 니들이 쳐놓고 왜 표정은 그따위인 건데. 누가보면 내가 사기꾼인줄 알겠다.
가게를 나서며, 일주일 동안 나를 괴롭힌 일에서 벗어난 즐거움을 느꼈지만 동시에 누가 봐도 '유죄'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가게 사장 커플을 보면서 더 확실히 죄를 물었어야 했나라는 아쉬움도 느꼈다.
경찰서에 갈까 생각도 했지만 외국인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그 사이에 스트레스를 겪고 싶지 않았다. 치앙마이에서 남은 시간은 이제 열 달 남짓인데 이러다가는 그중 몇 달을 중고 오토바이 가게와의 법적 논쟁으로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태어나서 사기꾼들과 직접 대면하는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기는 그들이 쳤지만 그들과 대면하면서 마음 고생은 나만 한 것 같다. 참 이상한 일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더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데 그 반대라니.
그러나 생각을 해보면 결국 부자가 되어 잘 먹고 잘 사는 건 내가 아니라 사기꾼일 것 같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과 제도를 지키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안 걸리면 그만이고 걸려도 솜방망이 처벌인데. 솜방방이 처벌을 받으면서도 계속 이익을 축적하면 그게 더 남는 장사 아니겠는가?
한국에서는 같은 회사에 다닌 고위급 직책의 인사가 사실 다른 회사에서 횡령으로 해고당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듣기도 했었다. 두 번의 회사에서 횡령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금액이 소액이라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았고 지금은 또 다른 회사에 리더급으로 이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포지션은 직원들을 관리하고 조직문화를 만들어 전파하는 역할이었다.
내가 너무 착해 빠진 건가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싫다. 나는 사기를 쳐가면서 살기 싫다. 이번 사건을 통해 그 마음이 더 확실해졌다.
그래도 이번 사건 덕분에 오토바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사기꾼들도 만나봤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앞으로 태국생활에서 무슨 일이 닥쳐도 덜 당황하며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사건이 해피엔딩인 까닭은 새로 구매한 오토바이가 매우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원래 마음에 들던 회색 색상은 주문하고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기에 마음에도 없는 빨간 오토바이를 구매했는데 펄이 들어간 빨간색이라 보면 볼수록 고급스럽고 예쁘다.
혼다 대리점에서 오토바이를 계약하는 자리. 잠시나마 부자? 가 된 기분을 느꼈다.
제품은 혼다에서 23년도에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신제품, Giorno라는 모델로 ABS까지 장착된 상위 버전으로 구매했다. 사기꾼 사건을 겪고 나서 그런지 7만바트(280만원)짜리를 고민 없이 결제했다. 일종의 보복성 소비랄까.
오토바이의 이름도 지어주었는데 씨댕이다. 태국어로 씨댕(สีแดง)은 빨간색이라는 뜻. 씨댕이 와의 만남은 전혀 계획에 없던 것이었는데 이것도 운명인가 보다. 남은 10개월 씨댕이와 치앙마이 곳곳을 열심히 돌아다니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