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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Dec 20. 2023

치앙마이 4034번 국도

#치앙마이 일년살기

얼마 전 치앙라이 여행에서 꽤 장거리의 오토바이 운전을 경험한 후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나 보다. 이번에는 치앙마이에서 구글맵으로 2시간여 거리라고 나오는 '치앙다오'라는 국립공원을 오토바이로 운전해서 가보려 했다.


치앙다오


하지만 1/3 지점이 지났을까, 자동차와 뒤엉켜서 고속으로 달려야 하는 길에서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는 그 길로 치앙다오행을 포기하고 근처 카페를 검색해 지금 막 도착한 길이다.


안 그래도 평균 시속 40km/h로 운전하고 최선을 다해봐야 50km/h를 찍는 나에게 속도를 내야 하는 도로에서의 운전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괜찮지 않아서 빠르게 포기했다.


태국이라는 곳이 원래 이렇기는 한데,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에서 방향을 조금만 트니 너무도 아름다운 시골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카페까지 향하는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우울증이 치료될 것만 같은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대로에서 방향을 틀어 카페까지 향하는 길은 4034번 국도.


논에는 왜가리 같은 새들이 평화롭게 날아나니고 있었고 조금 더 가서 작은 길로 들어서니 길 옆으로는 아름다운 하천이 흐르고 하천 옆에서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한국에 살았더라면 상상도 할 수 없던 풍경.



짧지만 강렬하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도착한 카페 역시 너무 아름다운 거라. 이런 곳에 카페를 만들어서 장사를 하는 주인장에게 고마울 지경이다.


Folklosophy Cafe'


주중 점심시간인 지금 카페에 나 혼자밖에 없는데 창 밖으로는 논 뷰가 펼쳐져 있고 눈앞의 창쪽으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새가 나무에 앉아서 놀다가 방금 날아갔다.


압도적으로 평화롭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욕심을 부려서 치앙마이 시내에서 치앙다오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가려다 중간에 포기해서 발생한 일이다.


치앙다오까지 운전을 도전하기로 한 결정도, 중간에 포기한 결정도 모두 결과적으로는 나쁜 결정이 하나 없었다.


치앙라이를 친구와 여행하며, 내가 욕심을 내서 친구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치앙라이 시내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도이창(도이는 산, 창은 코끼리라는 뜻)'이라는 산에 다녀왔다. 하지만 애초에 운전이 느린 내가 가니 거의 두 시간이 걸린 거라. 도이창에 들어서니 길이 좁고 구불구불해서 올라갈 때는 괜찮았는데 내려올 때는 사고라도 날까 극심히 조심하며 운전했고 속도도 전혀 내지 못했다. 도이창에서 내려와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거의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 뒤에 타고 있는 친구를 걱정하느라 피로도가 극에 달했고 애초에 도이창을 오토바이로 가자고 한 결정 자체를 크게 후회했다.


친구는 자신은 괜찮았고 오토바이 뒤에서 풍경 감상 잘했으니 나에게 자책하지 말고 지나간 일은 잊으라 말했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친구가 귀국한 이후에도 약간의 마음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오늘 치앙마이에서 치앙다오를 오토바이로 가려고 했던 것도 치앙라이에서의 일이 마음에 걸려서 나름 운전실력을 더 향상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내가 그렇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경험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나쁜 결정 같은 건 없는 것이다.


도이창에서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던 결정 덕분에 풍경을 더 여유롭게 즐긴다던가 하는 이점이 있었으리라. 만약 도이창을 택시를 불러서 차를 타고 갔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의 편안함이라는 이점이 있었을 것이고.

 

도이창 B2C 카페 전망
도이창에서 하산하는 길


자꾸 모든 일을 과거의 일에 연관시키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나. 이런 일이 있었다.

아빠가 어디서 버거킹 쿠폰을 받아와서 나에게 건넸다. 그때까지 버거킹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쿠폰을 받아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거킹에 가서 햄버거를 먹고 집으로 들어왔다. 다녀왔다고 아빠에게 말을 하는데 아빠가 나에게 건넨 말은 다음과 같았다.


"이런 싸가지 없는 년이 아빠한테 한 입도 안 주고 지 혼자 처먹고 들어와?"


나는 햄버거를 포장해서 집으로 와서 아빠와 함께 먹지 않은 결정에 대해서 두고두고 후회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했다.


아빠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주로 내가 함께 있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를까 지나치게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았고 이것을 고치는 것은 아마도 일평생을 지속해야 하는 숙제와도 같은 일이리라.


그리고 지금 그것을 하는 중이다.


나의 유년시절에 누가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을지라도 스스로 배워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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