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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an 24. 2024

거대 나무 ... 오르기(1)

꿈해석 에세이





꿈 제목 - 거대 나무 오르기
꿈 이미지 - 거대 나무, 산, 등산, 수직 사다리, 높이, 선두, 믿음, 세월, 불가능한 하산, 바람, 상승기류, 이정표
꿈 감정 - 웅장, 고민, 불만, 용기, 의연, 상상, 책임, 자유, 걱정, 믿음, 뿌듯함

아내와 일본여행 중이다.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이 산을 오르는 유일한 길은 이 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 뿐이라고 한다. 오를까 말까 잠시 고민한다. 굵은 나무 줄기에 잡고 딛고 오를 수 있도록 수직 사다리가 설치 되어 있다. 많은 관광객 무리들이 있었지만 모두 오르기를 주저한다. 내가 선두로 거침없이 오른다. 뒤따라 오르는 사람들은 느리다며 투덜대며 따라온다. 나는 개의치 않는다. 여길 지나간 용감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안심시킨다. 내가 몸이 아픈 환자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뚜벅뚜벅 올라갈 뿐이다.

이렇게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려면 몇 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것일까 상상한다. 제법 높이 올랐다고 생각되었을 때 아래를 내려다 본다. 사람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내 뒤를 따라서 올라오고 있다. 세찬 바람이 땅에서 위로 불어온다. 순간 다시 내려가는 일이 걱정이 된다. 다시 내려가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바람은 나를 올라가라고 세차게 밀어올린다. 두렵지만 먼저 이 나무를 올라간 사람들을 믿으며 올라간다. 나 또한 정상에 오른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뿌듯함이 몰려온다.




부정을 부정하기

이럴까 저럴까 망설여질 땐 내 스타일과 장점을 믿고 따라가는 게 맞다. 지금의 '흔들림 없음'은 변하지 않으려는 가련한 꼰대의 발버둥이 아니다. 자기 긍정이고 믿음이다. 이제 자기 부정과 의심은 할 만큼 했으니 그만하면 됐다. 타인을 의식한 말과 행동, 그리고 글쓰기까지, 내 것이 아닌  불편한 옷은 벗어던진다. 정말로 나답고 싶다면 욕먹을 각오 쯤은 돼 있어야 한다.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개의치 않을 뻔뻔함 정도는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무엇이 진정 나다운 것일까 놓치지 않을 것.

두려움 없이 뚜벅뚜벅 걷는 여정을 즐길 것.

게을러 보이더라도 느리게 가야할 때를 알 것.

미워할 대상을 정확히 알고 용기있게 미워할 것.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중년이 멋있다는 사실을 알 것.   

마음이 가자는 길로, 결과를 걱정하지 않고 일단 가 볼 것.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지 않을 것.

괜한 자격지심으로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스스로 무너지지 말 것.

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게 꾸밈없이 할 것.


오랜만에 충만감을 느낀 꿈을 꾸었다. 스스로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될만큼 단단하게 잘 자란 나무가 되었다. 그 나무를 스스로 오르며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려고 한다. 나무의 정상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에 부푼다.   




되돌아갈 수 없는 이정표되기

내가 써야만 하는 인간인 이유를 희미하게 알 것 같다. 해묵은 감정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한 것! 하나의 이야기를 쓰고 나면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이 해방감은 뭐라고 할까... 미련없이... 연인을 떠나보낸 마음. 사랑했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지만, 상처가 남지 않은 완전한 이별. 또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는 방랑자의 가벼운 발걸음.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죽을 각오를 하고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이다. 따갑게 아파 봐서 나를 살리기 위해 떠나야만 하는 결심이다.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나를 밀어올리는 바람은 더이상 내 안에 머물러 있게 놔두지 않는다. 좁고 답답한 땅으로 내려 갈 수 없는 이유는 내 뒤를 따르는 이들이 함께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좁아터진 땅에서 벗어나야 내 뒤를 따라 올라오는 이들의 길이 될 수 있다. 정상에는 더 크고 시원한 바람이 불 것이다. 땅으로 돌아가기엔 나는 이미 넓은 세상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커졌다.


어린 시절, 나보다 앞서 가는 이를 질투와 경쟁의 대상으로 여겼다. 미움과 자기 파괴의 시간을 지나, 나보다 앞선 이가 간 길이 나의 믿음을 만들어주는 이정표라 여겼던 때가 있었다. 혼자 가는 길이었지만 믿음 때문에 외롭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나는 누군가가 지나간 길을 안전하게 디디며 따라가는 삶을 살았다. 지금 나는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사람들 앞에 설 용기가 생겼다.




무쓸모의 쓸모

거대나무가 몇 천 년을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주목받지 않아서구나. 곧고 견실하게 '쓸모'있게 보이는 순간 나무는 누군가에 의해 베어졌을 것이다. 집의 기둥이 되었거나, 가구의 재료로 쓰였을 것이다.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이 오래 살아남는다. 쓸모 없어 보이는 것들의 쓸모는 오래 살아남아서 존재 자체가 이정표가 되어 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꿈속에서 거대나무를 기어오르는 나의 노력을 폄하하지 않는다. 앞장서서 스스로 기어오름으로서 존재 가체가 길이 되어주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나는 쓸모가 없음으로 그나마 조금 쓸모가 생긴 것에 만족한다. 쓸모가 없어도 존재 자체가 가치가 되던 원시의 시절로 되돌리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와버린 걸까.


쓸모가 있으면 잘 사는 게 아니라, 빨리 쓰이고 태워서 일찍 죽는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쓰일 목재는 살아있어서는 안 되며, 나무가 갖는 자발적 변화가능성을 완전히 소멸시켜야 한다. 좋은 인재가 되면 능동적이 아니라, 완전한 수동적 존재가 되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섬뜩한 가르침이다.


이 꿈은 장자 내편의 '거목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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