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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an 26. 2024

멀리 보기 VS 길게 보기





"오늘 안 내렸으면 내일을 기대하고, 내일 안 내리면 모레를 기대하고. 그건 말처럼 쉽지 않을 거야. 시간을 아주 길게 봐야 하거든."
"길게?" 라고 묻는 눈빛으로 바림이 고개를 들었다.
"응, 이 파란 물길처럼 아주 길게."
벌써 10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파란 티셔츠의 말처럼 고작 10년인지도 몰랐다. 이모도 말하지 않았다.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바림의 나이는 고작 서른아홉이라고. 지금의 자신보다 젊다며 부러움 섞인 눈으로 조카를 보지 않았는가 말이다.
- 이희영 <챌린지 블루> 중에서




멀리보기

먼 미래의 시간은 불확정적이다. 불확실성이 불안을 낳는다. 불안은 지금 당장 뭔가를 하지 않는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한다. 느리게 가거나 잠시 멈추면, 앞을 향해 달리고 있는 사람들보다 뒤쳐진다고 여긴다. 휴식은 악덕이 되고, 생활은 점점 속도전이 되어간다. 현재의 시간은 피로로 채워지고, 돌아오지 않는 결과에 초조해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멀리 보라 한다. 멀리 내다 보는 것을 '전망'이라 부른다. 어른들은 각자의 경험과 철학으로 10년, 20년 후 전망있는 직업을 예견한다. 막상 전망하는 시간에 도달해보면 상황은 예견에 빗나가 있기 일쑤다. 저명한 미래학자들의 전망은 나름의 객관적 근거와 자료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특별해 보이긴 하지만, 그것 또한 착시일 뿐이다. 미래를 전망하는 자들은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당신의 전망이 틀렸다고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예측은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한 게 본질아니냐는 최후의 변명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언자들의 말에 자기자신을 맞추려고 동분서주한다.


멀리보기를 한 단어의 명사로 표현한 것이 '꿈'이다. 어른들은 꿈의 추상성에 대해 말해 주지 않는다. 어른들이 말하는 미래 전망도 어디선가 누구에겐가 들은 정보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 추측한 결과다. 그렇게 말하는 어른 자신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미래 예측을 아이들에게 꿈이라는 이름으로 희망에 들뜨게 한다(전망과 희망의 언어에 들뜨게 하는 최일선의 사람이 교사인 나같은 사람임을 인정한다). 판도라 상자 속에 갖힌 '희망'에 아이들은 지치고 병들어 간다.


"어른, 교사, 예언가, 미래학자의 말을 믿지 마라! 차라리 예술가의 말을 믿어라."

어느 인문학자의 책에서 논리적 근거를 들이대는 학자들보다 예술가들의 통찰이 미래를 정확하게 본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신뢰한다. 시선이 멀리에 있으면 발 앞의 꽃들을 보지 못한다. 행복의 파랑새를 쫓는 치르치르와 미치르 꼴이 난다.




길게보기

"삶은 지독한 근시라서,  멀리 내다보기란 참 힘든 일입니다... 글쓰기도 그렇게 가다 쉬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 이희영 <챌린지 블루> 인터뷰 중에서


인디언들의 기우제는 100퍼센트의 적중률을 보인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낼 수 있는 것은 기우제 지내는 순간의 간절한 마음에 있다. 인디언의 기우제는 대자연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씀씀이에 있지 비가 오는 결과에 있지 않다.  


기다리는 자는 결과를 보고 내달리지 않고 과정을 즐긴다. 어차피 삶이란 자잘한 실패와 오류들, 그리고 간간히 찾아드는 단비같은 작은 성공들이 반복되고 쌓인 흔적들이다. 숨차면 걷고, 안 되면 다시 하고, 엎어지면 일어나고, 힘들면 쉬어가고, 길을 잘못 들면 돌아나오면 된다.  


길게보면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이미 나 있는 길보다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길을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길을 잘못 들었을 가능성은 산재해 있다. 잘못 들어온 길을 되돌아 나갈 용기만 장착하면 된다. 어차피 인생은 기니까. 인생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음미하며 걸어가는 산책길이다. 길가에 핀 꽃들과 새들과 바람에 인사하며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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