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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둥바둥 김대리 Dec 28. 2021

전세계약을 하고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돈거래를 해보아야 어른이 된다


이젠 나도 어른

지금까지 어른 흉내를 하고 살았구나



부동산 전세 계약서. 이때였던 것 같다. 내가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 든 것이. 그리고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 시점이. 열심히 한두 푼 모아서 생긴 돈으로 전셋집을 구하고 처음으로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였다. 왠지 모르게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전에는 직장인 느낌이 없었나? 그전까지는 눈뜨면 지척이던 회사였기에 직장인 느낌보다 합숙소의 수련생 같은 느낌이었다. 심한 표현으로는 외국에 나가서 외국인 노동자로 삶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첫 전셋집은 매우 작았다. 고시원 자취방이 이렇게 생겼을까? 게다가 방음도 잘 되지 않아 옆방에서의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복도식 오래된 다가구 주택이었고, 외관은 허름했다. 위치도 매우 외진 곳에 있었다. 지하철역은 도보로 15분 정도 소요가 되었다. 그래도 좋았다. 5평 남짓한 공간에 나의 침대와 책상이 있는 게 좋았고, 작았지만 주방의 냉장고도 너무 만족스러웠다. 내가 원하면 라면이라도 끓일 수 있는 하이라이트가 있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그전의 기숙사는 취식이 불가했고,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려면 버너를 이용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만의 화장실이 있어서 행복했다. 더 이상 공용 목욕탕처럼 서로의 알몸을 공유하며 샤워하는 일은 없었다.



셔틀을 타려면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보다 더 일찍 잠들어야 했고,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도시에서 일어나서 도시로 퇴근하는 삶. 공장으로 출근하고 공장 근처로 퇴근하는 삶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었는데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회사 셔틀이 이내 회사에 들어섰다. 셔틀에서 내리자마자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사내 식당으로 모두가 걸어갔다. 그렇게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일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셔틀로의 첫 출근 후 아침은 그전과는 달랐다. 특별한 맛이 났다. 기숙사에서 탈출한 탈옥수의 첫 세상밥 같은 느낌.



셔틀버스를 타고 전셋집에서 출근한 첫날에 나는 회사에서 종교지도자가 되어버렸다. 주변 동기들 모두에게 빨리 그 지옥 같은 기숙사와 아파트에서 벗어나라고 설파하고 다녔다. '얼마나 좋은지 너희들은 모를 거야'라고 외쳐 대며, 누가 십일조를 주는 것도 아닌데 무료로 강연하고 설득하고 다녔다. 이 좋은 것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 아까웠다. 삶의 질이 달라지고, 얼굴 혈색이 달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서 통닭, 피자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소소한 편의시설들이 이제는 가능해졌다고 이야기했다. 퇴근길의 맡게 되는 화학물질 냄새 대신, 곱창과 삼겹살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주변에 편의 시설이 없어서 이용하지 못하는 것과, 있는데 이용하지 않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할까. 당연히 후자이다. 전자는 회사 기숙사 때의 삶이고, 후자는 전셋집으로 독립하고 나서의 삶이었다. 물론 나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 배달음식을 시켜먹지는 않았다. 그래도 주변에 배달시킬 수 있는 수많은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의 질이 그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랬다. 이래서 좋은 곳에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나보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고, 지하철도 있고, 음식점도 많고, 공원도 있는 그런 지역. 게다가 애들 키우기도 좋고, 안전한 그런 동네. 그런 곳이 거주환경이 좋은 곳이고 부동산 가격이 높은 곳이었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

집주인은 어떤사람일까?



5층정도 되는 건물이었던것 같다. 건물 이름은 주택이었지만 다가구 주택으로 한층에 7~8개의 집이 있었다. 5층 건물이었으니 약 40개의 집이 있는것이다. 이 주택소유자는 한사람 이었다. 부동산 거래를 할때 부동산 중개사가 '이분 완전 부자에요. 그래서 다른 집은 다 월세를 받는데 고객님만 특별히 전세로 한집 해주시는 거에요'. 그랬다. 나는 월세를 내는게 아까워서 계약한 집을 전세로 해줄수 없냐고 부탁했고, 그래서 전세로 계약을 했다. 월세는 약 50만원~60만원 수준이었다. 그 돈이 너무 아까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40개의 집을 50만원에 월세로 모두 돌리면 매월 2,000만원을 버는것이었다. 부동산 사장님 말씀처럼 이분은 부자가 맞았다. 게다가 이런 건물이 여러채 있다고 했으니, 노후걱정은 필요 없으리라. 잔금을 치를때 건물주를 대면했는데, 그 인자한 인상과 목소리가 부자다운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어렴풋이나마 나도 저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세계약서를 작성하고 몇천만원이나 되는 금액을 거래하다보니 비로서 어른이 되었고, 부동산에 눈을 서서히 뜨게 되었다. 그러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나는 너무 허름한 주택의 원룸에 살고 있는데, 주변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단지내에 인공폭포마저도 너무 부러웠다. 아파트 단지내의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동산 어플에 들어가 가격을 살펴 보았다. 4억이 넘는 금액이었다. 나에게는 그 금액이 머나먼 세상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도저히 모을수 있는 금액이 아닌 넘사벽같은 금액대 였다.



당시에는 대출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집이라면 내돈 100% 있어야 살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 맞다고 여겼다. 부모님도 빚은 나쁜것이라고 생각했고, 전세집을 구할때도 전세대출은 하지마라고 하셨다. 부족하면 본인들이 지원해 줄테니 절대 빚은 지지 마라고 하셨다. 만약 그때 대출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같았더라면, 더 빠르게 서울에 집을 마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경제에 무지했고, 부동산에 무지했다.



그렇게 나는 첫 전세집을 계약하고 어른이 된후로,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서서히 어른의 세상속으로 젖어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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