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에 나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사이즈에 쫄리고, 고무줄에 쫄리고, 브라와이어에 쫄리는게 여성성일까?
맛있게 밥을 먹다 와이어에 음식물이 걸려 소화가 안되는것 같은 느낌에 브라를 푼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유없이 몸이 안좋고 짜증났던 어느날 나는 진지하게 이 짜증의 원인을 생각했던 적이 있다. 바지를 벗었을때 풀어헤쳐지는 긴장감에 문득 ‘온갖 기준들에 맞춰 쫄리는 삶을 사는데 이깟 바지 따위에도 쫄리며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작은 사이즈의 바지에 꾸역꾸역 내 다리를 끼워 넣으며 짜증을 업그레이드 시켜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괘씸했다. 이제서야 누군가 정해둔 사이즈에 나를 끼워 넣어왔다는걸 알아차리다니.
나는 그 날 나를 졸라왔던 바지를 모두 가위로 잘라버렸다. 그리고 사이즈가 넉넉한 바지를 샀다. 더불어 와이어가 없는 브라도 몇 개 집어왔다. 중학생 때부터 이십여년, 나는 왜 그리도 오랫동안 브라 와이어로, 각종 사이즈로 내 명치와 허리춤을 틀어막고 살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살이 좀 찐 이후부터는 혹여라도 맞는 사이즈가 있으면 기분이 좋아 사놓곤 했다. 하지만 내장을 쥐어짜는 고통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기성 사이즈에 맞지 않는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옷을 사이즈 때문에 못입는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고, 출근을 준비하며 옷장만 열면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그렇게 사회적 기준에도 못미치나? 내가 그렇게 뚱뚱한가?' 그렇게 시작한 하루는 엉망진창 이었다.
살이 빠진것 같은 어느날 가슴부분이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출근했는데 집을 나선지 십분만에 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지각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토할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이후로 몸매가 좋든 아니든 누군가가 타이트한 옷을 입고 지나가기라도 하면 인상이 찌푸려졌다. 타이트하고 짧기까지 하면 쳐다도 보기 싫어졌다.
요즘 기성 라지사이즈는 '라지' 라는 의미와 다르게 넉넉하지가 않다. 그런데 나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 사이즈에 나를 끼워 넣고 맞추며 나를 사회가 기준하는 라지사이즈를 넘겨버린 뚱뚱한 여자로 간주하고 자존감을 구겨왔던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맞지도 않는 기성 사이즈에 나를 끼워넣고 싶지가 않았다. '사이즈' 하나 때문에 모든것이 불행했던 그 날 이후 나는 내 사이즈에 모든것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사이즈에 더이상 쫄리며 살지 않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맞춰왔던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는건 생각보다 쉽다. '사이즈'라는건 말 그대로 수치로 표현되는 나의 표면적 형태가 아닌가. 눈코입 모두가 다 있다고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세상에 없듯 사이즈도 응당 그래야하거늘 어떻게 정해진 '기성'에 나를 맞춘다는 말인지, 기준에서 벗어나고 보니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쫄리며 살고싶지 않다.
사이즈 뿐만 아니라 나를 옥죄는 모든것으로부터 하나씩 하나씩 벗어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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