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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May 11. 2019

나는 아직도 결혼이 두렵다

그놈의 밥



오늘도 나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결혼 안하셨어요?”
무어라 대답할까, 나는 매번 생각이 많아진다. “그냥” 과 “그렇게 됐어요” 를 돌려막기 중이다. 어떻게 적절히 설명해야 할지 아직도 그럴듯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유교의 가장 중심인 '남존여비'사상 아래 정상적으로 교육받고 자라난 한국 남자와 그 유교사상에 수많은 억울함과 질문을 던지는 내가 만나 결혼 했을때 벌어지는 일들이 안봐도 비디오 인데다, 그 많고 많을 아주 작은 일들을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미리 생각하는것 만으로도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려진 풍선만큼 위태로운 기분이 된다.

이렇게 생각만으로도 눈쌀이 찌푸려지는 위태로운 풍선 같은 결혼,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수 있을까.

이십대에는 막연하게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결혼을 생각했다. 그래서 뭣 모를때 결혼하라 라는 말이 있는걸까.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눈치채 버렸다. 결혼은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로 분류 되면서 결국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가 선택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결혼이 두려워 졌다.

오랜만에 지인의 작업실에서 친구들과 모였는데 공교롭게도 나 혼자 싱글이었다. 나를 제외한 네 친구 모두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었다. 그녀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며느라기]라는 웹툰이 있는데 자신들의 이야기 같아 소름끼친다는 것이었다. 내가 놀란 사실은 그 웹툰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을 바탕으로 극대화된 허구가 아닌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정말 ‘현실’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며느리가 출장을 간다거나 며칠 집을 비우게 되면 정말로, 실제로, 자기 아들의 밥은 어떡하냐는 말을 각자 사정이 다른 네 친구가 시어머니에게 듣는다는 것이었다. 잘못된것은 모두 며느리탓 잘된것은 모두 아들탓인건 기본이고 ‘좋은 시어머니’라 불리는 분도 아들이 밥을 차리는건 싫어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놈의 밥!!
밥 얘기를 하다가 나는 진심으로 유교경전에 [밥]에 대한 항목이 명시되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혹시 알까? 정말 신성한 밥을 짓는 행위는 여자만 하도록 규정되어 있는걸지도.

“정월 지난 무에 삼십 넘은 여자”라는 옛속담이 있다
“시대가 변했다”라고는 하는데 강산이 몇번이나 변하고 변해 이제 변했다는 말이 무색한 시대에 여자에 대한 그놈의 옛인식은 변하지 않는걸까.

내가 결혼이 두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성공 스러운)결혼에 대한 고착화 된 인식 때문이다.

얼마전 결혼하는 친구가 있어 오랜만에 몇명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그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한 브라이덜 샤워 였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알이 큰 다이아 반지를 받고 결혼 해 강남에 위치한 큰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야 그래도 다이아는 받고 결혼해야지, 꼭 사달라고 해 꼭!”
이번에 결혼하게 된 친구는 양쪽 부모님께 한 푼도 지원을 받지 않고 시작하게 되어 그렇게 많지 않은 돈으로 빠듯하게 결혼을 준비한 터라 다이아는 커녕 예물도 필요없어 최대한으로 줄이게 된 친구이다.

약 10분 후 결혼할 친구는 눈물을 흘렸다. 갑분싸....
다이아가 성공한 결혼의 기준인 친구는 다이아 이론 이후 성공한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까지 학력과 미모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재산이 많은 남자를 만나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 그리고 본인 만큼은 아니지만 남들이 봤을때 성공한 결혼의 적정 기준이 어떤건지에 대한 논리가 탄탄한 한편의 드라마 같은 시나리오에 대해.

그날의 브라이덜 샤워는 한시간여만에 해체 되었다. 나는 결혼하게 되더라도 절대 브라이덜 샤워는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한국에 존재하는 사람을 대치동에 사는 사람과 안사는 사람 두 부류로 분류하는 사람이 자기 상사라 말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사실 속으로는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 한편을 보는것 같아 좀 재미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내가 그런 결혼을 했다면 내 이모들이 우리 엄마를 많이 부러워 했을거란 생각은 들었다. 물론 그럴일은 없겠지만!

수학문제가 아닌 이상 정답이란건 없다고 생각하는 나와 다이아 반지가 결혼의 정답인 그녀는 더이상 친구로 지낼수 없었다. 물론 나도 그게 잘못된 거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 인생은 그녀의 것이므로. 단지 주위의 칭찬과 부러움에 도취되어 자신의 결혼이 성공한 결혼이라 단정 짓고 이제 막 시작하는 친구의 결혼을 마치 정답이 아닌것처럼 말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얼추 비슷해 보일지는 몰라도 성공에 대한, 결혼에 대한 가치와 개념은 사람마다 다르다는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결혼을 하지 않는것이 행복 추구의 전부 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결혼반지가 좋은 결혼의 기준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신혼여행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함께 있을수 있게 된 것만으로 성공한 결혼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사람들의 아직도 자신의 경험을 무기로 “이 정도는 되야 한다”라는 기준을 가지고 따가운 시선을 보낸다.

“결혼은 현실이야 돈문제가 제일 크다니까”
“사랑받는 결혼을 해야지”
“옆집은 글쎄 예비사위가 딸이 모은 돈을 통째로예비 장모한테 선물로 줬대”
“니가 뭐가 아까워서 너보다 못버는 남자 만나니”

그나저나
나도 할 수 있을까? 결혼.
나는 아직도 결혼이 두렵고 부담스럽다.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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