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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n 09. 2019

삼십대의 후회는 말이야

잠들기 전의 단상

잠이 오지 않으면 차라리 기도를 하자


자려고 누우니 애써 덮어놨던 걱정들이 침묵의 뚜껑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나는 걱정이 많은 밤이면 생각이 자꾸 내일로 가서 미리 살아보게 된다. 이런 저런 일들을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게 되는것 같다. 눈을 감은채로 눈쌀을 찌푸려 본다.

‘아냐 일단 오늘 못 끝낸 작업을 먼저 해놓고.... 아냐 그거 하루만에 안될텐데. 어떡해야 하지? 어라 한시간 타이머를 걸어두었던 노래가 벌써 끝났네, 아 지금이라도 빨리 자야해. 여섯시간은 잘 수 있어.’

여섯시간이라도 자려고, 미래로 달려가 열심히 미리 살아내고 있는 마음을 억지로 끌고 온다.

‘왜 이래 미리 걱정해봐야 소용없다는거 알잖아. 잠이나 자 젠장. 깊은 한숨을 일곱 번은 쉰것 같네. 생각좀 하지말자. 양이라도 세어볼까. 근데 로또는 진짜 됐으면 좋겠다. 2등이라도. 아니야 이왕이면 1등이 됐으면 좋겠어. 그럼 매일 내 영혼을 조금씩 갉아 먹는 박실장 얼굴은 보지 않아도 될텐데. 아 생각만 해도 행복해. 그래 내일은 복권을 사야겠어. 이번주에 되면 다음주 월요일에 바로 사표를 내는거지.’
‘아 씨..오늘 너무 피곤했는데 왜이렇게 잠이 안오는거야. 꼭 피곤한 날은 더 잠이 안오더라. 여덟시간은 자야하는데. 내일은 꼭 여덟시간 자야지. 시계를 보니 새벽두시, 망했네. 다섯시간 이라도 자야하는데.’

대학 시절 나의 별명은 포켓몬스터에서 잠만자는 캐릭터인 ‘잠만보’ 였다. 잠을 하도 자서 그렇게 빨리, 많이 자기 쉽지 않다며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스무살의 나는 불면증이 뭔지 그런건 왜 걸리는건지 몰랐다.


어차피 살게 될 내일을 왜 미리 사는지 모르겠다. 시뮬레이션 해봐야 무슨 복병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게 인생인데. 이렇게 매번 하루를 두 번 살다보면 두 배로 피곤하다.


갑자기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의 정해인이 손예진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미리부터 걱정하지 마. 닥쳐서 해결하면 된다니까?"

이래서 드라마 본다. 이래서.


그나저나 잠좀 자자 이제.....


걱정은 여유를 축낸다. 머릿속에 생각통이 비어야 여유가 생기는데 걱정이 꽉 차 있어 여유는 커녕 후회를 자꾸 생산한다. 후회와 미리 걱정 속에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이십대의 후회란 잘 자고 일어나면 잊혀질 일회용 후회라면 삼십대의 후회는 자려고 누우면 계속 생각나는 다회용 후회 인가보다.  


나 이제 진짜 잔다.




쓰는 아도르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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