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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May 09. 2018

굽이 돌아가는 길 멀고 쓰라릴지라도

서로가 길이되어 가는것


박노해 [굽이 돌아가는길] 아도르캘리그라피


드라마 [미생]에서 "회사 안은 전쟁터라고? 회사 밖은 지옥이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우리는 왜 전쟁터 아니면 지옥인가. 전쟁터가 지옥보다 조금 나을까? 나에게는 전쟁터가 곧 지옥이었는데. 나는 전쟁터에서 아직 쓸모있는 군인이라고 아무리 위안을 해봐도 별반 나아질 것이 없었다. 전쟁터와 지옥 중 하나라도 선택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걸까.


나는 유난히도 그 전쟁이 힘든 사람이었다. 생계라는 이름으로 모두들 총 한자루씩 쥐고 필요하면 그 누구든 쏴버리는 사람들 속에서 넋놓고 13여년을 지내보니, 어느날 지하철 안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장면이 너무 징그러워 속이 메스꺼웠다. 생계를 벗어난 영역에서 사람 좋은 사람들로 돌변하는 모습에 이질감이 들어서 낯설었고, 인스타그램속 누구보다 감성적이고 따뜻한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극한의 지옥을 경험하고 나서야 전쟁터를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쟁을 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재능으로 나는 어떻게 총을 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에 최초로 세상을 보는 사람처럼 생각해 보았다. 너무 오랜 시간 전쟁터를 향했기에 갈 곳 잃은 내 발걸음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쉽사리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진작에 전쟁터를 빠져나와 방황해 볼껄, 전쟁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 볼껄. 


더 이상 갈곳이 없는 내 정처없는 발걸음을 위해 작업실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의 혼자의 하루는 또다른 형태의 내 자신과의 싸움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왕 싸울거면 내 자신과 싸우는것이 나를 발전시킨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물론 전쟁터에서 싸울때보다 7배 정도는 불안하다. 전쟁터에서는 월급이라는 강력한 전쟁의 동기가 있었으니까. 잠이 오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월세를 내야 하는데 월급은 사라졌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공간에서의 허망함은 아침에 일찍 눈을 뜨게 만들었다. 그래서 하루에 몇 초 쯤은 전쟁터가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전쟁터에서 생계라는 총을 쥐고 총알을 난사하던  살벌한 눈동자들을 떠올리면 이내 '굽이 돌아오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목적지도 없이 남들 따라 가던 길에서 나와 굽이 돌아가는 중이다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리다는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박노해 시인의 <굽이 돌아가는 이라는 시가 있다.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은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은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 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되어 가는 것입니다.
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나는 자꾸 나를 돌아보지 않게전쟁터로 돌아가지 않게주저앉아도 다시 일어날  있게곧은길이 아닌 굽은길에서 진짜  행복을 찾을  있게 나를 다독여줄 생각이다. 그래서  굽은 길에서 혹시 나처럼 전쟁터에서 빠져나와 지친 사람들을 만나 서로가 길이 되어   있다면 좋겠다





아도르캘리그라피

블로그 http://blog.naver.com/jwhj0048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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