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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n 16. 2019

다시 회사원이 된 이유

회사와 퇴사 그놈의 ‘사’자

회사 옥상에서 보이는 풍경이 일품이다, 자주 땡땡이를 칠 예정이다


퇴사후 1년하고 그 절반이 더 지난 후 나는 다시 회사원이 되어야겠다는 견고한 마음을 먹었다. 늘상 어려운 경기, 나이, 연봉, 하지도 않은 결혼, 어느 하나 문제되지 않는것 없는 재취업은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이긴 한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재취업을 의아하게 여겼고 나의 회사원에 대한 견고한 마음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취업을 마음먹은지 9개월만에 '내생에 가장 어렵사리' 회사원이 되었다.


알량한 월급이 너무 치사했고 그 알량함을 쪼개고 모아야만 그나마 재산이라 부를만한것이 생기는 황망했던 그 회사생활을 다시 견고한 마음으로 바라게 될줄은 정말 몰랐지만 나 혼자의 자립을 의심한다는건 생각보다 절망적 이었다. 매일밤 자려고 누우면 마음속에 천둥이 쳤다. 아득한 미래가 천둥번개처럼 내리치면 얼마나 무서운지, 이 천둥번개를 매일밤 겪고 겪는 내가 대견할 정도였다. 그렇다. 돈이 모자랐다. 정말 많이 모자랐다. 매일 밤마다, 아침마다 그렇게 나의 자립을 의심해야 했다. 그리고 견뎌야 했다.


2년의 시간동안 여행은 커녕 축하의 비용인 축의금 조차도 사치였다. 친구와 먹는 저녁 한끼에도 가성비를 떠올리는 냉소적인 나를 발견했고 이렇게 버티는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제 다시는 회사원이 되지 않겠다던 나의 호언장담을 멋지게 지켜보이기 위한 마음 반과 회사 안에서 겪었던, 다시 내 생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일들에 대한 두려움 반으로 회사원이 되기를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퇴사를 후회하는건 아니다. '회사'라는 카테고리가 빠진 내 인생에도 생각보다 근사한 일들이 많이 생겼고 그로 인해 내 생에 다시없을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어렴풋하게나마 회사원이 아닌 앞으로의 삶을 계획할 수 있었다.


과거의 회사원으로서의 나는 잦은 울컥에 마음이 항상 공복이었다. 마음의 공복을 채우지 못해 몸도 많이 아팠다. 자발적 백수가 된 후 충분히 쉬고 충분히 울고 충분히 원망하고 화를 냈다. 그리고 더이상 삶의 울컥이 없어졌다. 돈을 너무 못벌어서, 사회활동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일상들을 하지 못할때는 가끔 내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밀려난것 처럼 느껴졌지만 그것조차도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보지않으면 해결이 됐다.


백수로서 일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햇살이 좋은 봄날 길을 걷는데 나의 존재가 보석처럼 느껴졌다. 보이는 모습이 반짝거리진 않았겠지만 맑은 햇살아래 편안한 복장으로 그냥 걷고 있는 내가 반짝거리는것 같았다. 모든 불행은 각자의 사유재산이라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과거의 불행들이 아직도 내안에 많이 비축되어있다는 사실에 쓸데없이 든든했다.


울컥하느라 먹어댄 불닭볶음면이 더이상 당기지 않았다. 한잔의 와인을 느긋하게 마셨다. 울컥하느라 부르튼 위장에 주입됐던 매일의 맥주는 이제 더이상 필요치 않았다. 마음속 모든 상처가 회복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했고 포트폴리오를 다시 꺼냈다.


'이것은 불행 저것은 행복' 이라고 단순하게 정리되면 얼마나 쉬울까만 양방향의 인생체험을 통해 그 어느쪽도 완전한 어떤 것이라고 말 할수 없다는걸 알게 되었다. 어슴푸레 짐작만 하는것과 세상을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통과하는것은 정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래서 한번 퇴사와 온몸으로 부딪혀 보라거나 그냥 회사를 다니라거나 하는 말들을 더이상은 쉽게 내뱉지 못하게 되었다. 절대로 다른 각자 자신만의 삶이 있다는 것 외에는 다른이의 삶에 대해 그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꿀먹은 벙어리' 라고 하나보다.


어쨌든 나는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연봉은 절반으로 깎았지만 칼퇴를 보장받았다. 아니 사실은 정시퇴근, 나의 정당한 퇴근의 권리를 보장받은 것이다. 출퇴근 거리는 30분, 회사에는 맛있는 아이스라떼를 마실수 있는 커피머신이 있었다. 낮은연봉과 근거리 그리고 아이스라떼! 그 세가지로 나는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그리고 또하나, 나에겐 이제 회사가 전부가 아니다. 브런치가 있다. 퇴근길에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며 언제든 나는 글을 쓸 수 있다. 쓰지 않고 살았던 시간들이 모두 재산이라 했던 고 박완서 작가님의 말처럼 나는 이제 지난 시간동안의 잦은 울컥들을 조금씩 써내며 살 수 있다면 한 낮의 울컥들을 퇴근후에 달랠수 있겠다 싶다.


정시퇴근과 30분 출근시간, 아이스라떼 그리고 브런치. 이것이 내가 다시 회사원이 된 이유.




쓰는 아도르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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