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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l 25. 2020

마이너스는 아프지도 말란거예요?

아플때는 일 안할 권리를 누리며 살고 싶다

[심슨]중에서


지난 겨울, 지독한 기침감기에 걸렸었다.


여름의 끝자락부터 온갖 염증들이 내 몸 여기저기를 차지했다. 항공성중이염, 위염, 임파선염, 편도염, 봉와직염, 비염등 "~~염"으로 불리우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여섯개의 염증과 동시다발적으로 이름 모를 근육통들까지 추가되니 '순한맛'일상은 '딱 죽을맛'이 되었다.


내가 간과한 내몸 케어의 결과인 것 같아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의사선생님은 "나이들어서"라고 뼈때리는 조언을 했지만 이쯤되니 원인을 알고 싶었다. "진짜 제 몸이 왜이런걸까요?"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더니 면역력이 바닥이라고 말씀하셨다. 잠을 푹 자야 한단다.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전설의 '3분 기절' 자랑하던 내가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깊은밤 상상을 초월하는 꿈속을 헤매이다 깨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른과 직장인의 영역인 불면증의 세계의 첫발을 디딘 것.


꿈얘기만 모아도 책 한권이 나올만큼 다양한 꿈의 세계를 경험해 눈만 뜨면 '꿈해몽'을 찾아봤다. 새로 이사간 집에 화장실이 없어 스트레스 받는 꿈, 방문을 열었더니 낭떠러지 이거나 내가 들어가는 건물마다 흔들리고 무너지는 꿈등 나의 불안은 아주 구체적인 모습으로 꿈에 투영됐다. 이게 그 무섭다는 아홉수의 저주일까 하는 생각까지 하다가 '그래 이 몸을 40년 가까이 썼으면 이럴때도 됐지'라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운명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우연에 대한 설레임으로 100%를 채웠던 풋풋했던 나에게도 불면증이 오고 건강이상이 생기는구나, 하고 이제서야 내 건강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인생 선배들이 “너도 마흔 돼봐~ 일단 몸이 달라” 라는 말을 할때만 해도 또 그소리냐며 웃어넘기곤 했는데 정말로 내 건강상태가 내나이의 알람이 되고야 말았다.


미리미리 건강을 챙겼으면 좋으련만 이미 많이 지쳐버린 위장에 영양제를 급히 투여해봐야 크게 소용도 없었다. 요가도 시작했고 한약도 먹었지만 이미 심각해진 기침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침 때문에 2주동안 거의 몇 시간도 자지 못한채 시간이 흘렀다. 목에 파를 감고, 물수건을 감고 자고 마스크를 끼고 자고 온갖 방법을 써도 소용이 없었다. 온 몸이 들썩거리는 기침으로 정말 딱 죽을맛인 와중에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하지 않아 미운털 박힌 나는 업무시간에 병원을 갈 수도 없었다. 공휴일도 마이너스 되는 연차시스템 덕분에 연차조차도 쓸 수 없었다. 1주일을 지켜보던 직장동료가 며칠 쉬는게 어떠냐고 말했을때 내 연차는 마이너스라 쉴 수 없다고 대답했더니 동료가 말했다.


아니, 마이너스는 아프지도 말란거예요?


듣고보니 울컥했다. 내가 마이너스가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니고 공휴일에 맞춰서 아플수도 없는데 아플때 쉴 수 없는건 너무한거 아닌가 싶었다. 더구나 이 회사는 병가따윈 없고 공휴일, 대체휴일도 연차에서 처리되어 쉴 수 있는 날도 별로 없다. 바로 이럴때 회사원은 회사를 때려치고 싶어지는게 아닐까. 아픈 것까지 참아가며 억척스럽게 일해야 성실하단 말을 듣고 인정받을 수 있는건 아닌데. 우리는 로봇이 아니고 때로 기침때문에 출근하지 못하는 한 낱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회사원도 아플 권리가 있고, 아플때는 눈치 보지 않고 쉬고 싶다. 많은 권리를 누리기를 바라는게 아니다. 사람이 가장 나약해질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아픈날 연차 하나가 날아가는 것도 서러운데 아플까봐 전전긍긍 몸을 사리며 회사를 다니는 건 너무 불행한 일이 아닌가. 모든 퇴사의 사유는 가지각색 이겠지만 들여다보면 이렇게 사소한 불행함들이 결국은 회사를 그만두고 싶게 만드는게 아닐까 싶다. 마이너스 일지라도 내 몸이 아플때는 당당하게 출근하지 않을 예정이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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