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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Dec 04. 2017

낯설어 지기

익숙해지면 설레임은 바닥난다

전시회를 보려고 강서끝에서 강북 끝까지 여행을 갔다. 서울은 참 크구나 하고 새삼스러워 하면서.


뒤 돌아보면 이마를 찧을만큼 사람이 많아서 눈에 띄는 것들만 보고 나오는데 작가들의 시선을 천천히 즐기진 못했어도 작품을 설명하며 부끄러워 하는 모습들이 풋풋해서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의 밀폐된 공간에서의 많은 인파로 인한 날숨과 그로인한 더위 때문에 간절해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찾아 미술관 주변을 배회했다. 커피를 사들고 공원을 걷는데 특별히 바쁠것 없지만 설레이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는 이 상황과 날씨가 마치 스무살의 어떤날을 떠올리게 했다.


대학시절 방과후 우연히 과선배를 만났고 하필 그날이 내 생일이어서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나는 그 날 우리에게 술을 사주었던 선배와 사귀게 되었다. 그날의 우연은 우리를 인연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일이었고 나는 이런 우연이 지루한 일상에 꽤 묘한 무드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앞으로 내 삶에 이런 우연이 많이 일어나길 하고 바랬었다.


그런데 오늘 이 낯선 장소에서 그 우연이 떠올랐고 왜 좋은 우연은 드라마처럼 잘 일어나지 않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한번쯤 만날법도 한 그리운 사람,
우연을 핑계삼아 사과라도 한 개 건네야 할 사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처 연락하지 못하고 그대로 멀어진 사람 등등

다정한 그 관계들이 새삼스레 그리워 어떤 우연이 생긴다면 오늘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괜히 길을 잃은척 ‘이길이 아니네’ 하고 중얼거리며 기분좋은 길잃기를 하다가 이내 슬퍼졌다.


나에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미술관 안의 싱그러운 열정과 겨우 십여년전 우연 한자락에 느끼는 소심한 설렘이 너무 낯설어서, 지금 이런 내가 너무 쓸쓸해졌던 것이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설렘이라니 이토록 퍽퍽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니 하고.


나도 다시 그런 설레임을 느낄 수 있을까?


익숙해질수록 설레임은 바닥난다.

그러니 우리는 자주,

되로록이면 종종 낯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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