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
그 증상은 언제나 급작스럽게 맥락도 없이 나타났다. 그날도 그랬다. 출근을 하기 위해 택시를 탄 그 순간이었다.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고, 실체도 파악할 수 없는 두려움이 해일처럼 밀려든 것은. 그 증상이 시작되면 내 남은 인생이 너무나 길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나는 혼자서 딸을 양육하며 일정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가진 능력과 한계를 넘어서 발버둥을 쳐야 했다. 꽤 오래도록 극도의 긴장을 유지한 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영혼은 툭 쓰러져 한동안일어날 줄을 몰랐다. 내면 따위를 돌보기 위한 휴식은 내가 모르는 영역이었고, 더 많은 일을 하며 바쁘게 사는 것이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라 믿었다. 잠시라도 멈춘다면 성공의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이 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내 인생을 움켜쥐고 도무지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거운 현실을 벗어날 방법을 몰라 위태롭게 버티는 자에겐 어떤 평화도 없었다. 삶은 서서히 부서져 내렸다. 어느 날 빈 수레를 주운 뒤로 하루 종일 땅만 보며 수레에 물건을 주워 담는, 그림책 속 곰의 모습은 영락없는 나였다. 곰은 물건들에 집착하느라 폭풍우가 몰아치고 나무가 부러져도 알지 못했다. 급기야 나무가 자신을 향해 쓰러지는 것도 알아채지 못해 큰 위험에 빠질 뻔했다. 곰을 구해준 것은 종달새였다. 종달새의 다급한 외침에 겨우 나무를 피한 곰은 그때에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텅 빈수레를.
곰은 땅에 떨어진 물건을 줍느라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했다. 어느 순간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수레는 망가졌지만 곰은 그 조차도 알아채지 못하고 땅만 보며 쉴 새 없이 수레를 채웠다. 그러나 종달새의 외침을 듣고 돌아본 자신의 수레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늘을, 새들의 노래를, 길 위의 꽃들을 잃고 부질없는 욕망을 따르다 망가진 인생처럼 수레는 잡동사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이미 부서져 그 위에 실렸던 집착의 결과물들을 지나온 길 위에 토해내었을 따름이었다.
곰의 기분이 어땠는지 나는 알 것 같았다. 남들만큼은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갈수록 인생은 무겁고 또 무서워, 어느 날 갑자기 영혼은 툭툭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날들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그때. 내속 구석구석 들어찬 허무가 넘칠 듯 말 듯 찰랑거리던 위험했던 순간. 내게도 기적처럼 종달새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간신히 돌아본 내 인생.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어깨가 아프고 등이 굽도록 열심히 일했건만 삶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반대로 가슴은 텅 빈 것처럼 공허하기만 한가. 그 공허에 질식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밀려드는가. 앞만 보며 달리느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를 스치고 지나갔을 소중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에 마음이 시려오기도 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도 종달새의 외침이 필요하다.
위험을 알린 종달새의 외침에 대한 곰의 대답은 수레를 버리는 것이었다. 곰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종달새의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걷는 삶을 선택했다. 이토록 가슴 뭉클한 해피엔딩이 있을까? 곰은 수레를 버림으로 비로소 해방되었던 것이다. 이제 내 차례였다. 세상의 욕망을 잔뜩 실은 수레가 내 인생을 어디로 데려가고 있었는가 잠시 멈추고 돌아보아야 했다. 곰에겐 족쇄였던 수레가 토끼들의 아늑한 안식처가 된 것처럼 나를 허무의 절벽으로 내몰던 수레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는 도구가 된다면 좋겠다. 앞으로의 인생길에서 만날 소중한 인연들과 나눌 희망을 수레에 담아 기쁘게 길을 걷는 삶을 꿈꾼다.
나는 어떤 우연한 기회로 관심도 없던 그림책을 읽고 수업을 만들게 되었다. 내가 만든 그림책 수업으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글을 썼다. 단지 그뿐이었는데 내 안에서 넘칠 듯 찰랑대던 허무의 수위가 어느새 낮아졌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치던 그 증상도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다. 나는 여전히 치열하게 일을 한다. 그러나 달라진 게 있다면 더 이상 두려움이 나의 영혼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에서 찾은 영성은 새로운 비전이 되어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그림책을 담은 수레를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함께 끌며 길을 걷고 싶다. 길 위에 핀 꽃들과 살랑살랑 흔들리는 버드나무, 그 사이를 나는 나비를 눈에 담고,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종달새의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길을 걷는 우리를 상상한다. 종알종알 웃으며 걷다가 올려다본 하늘은 참으로 맑고 높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