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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Feb 23. 2024

두 사람

서로 다른 너와 나

나는 관계에 서툴다. 타인에게 진심을 전하는 방식도 서툴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게 닿지 못 한 채 내 안에서 사라져 버리는 말들이 많다. 타인은 나의 서툶을 차가움으로 해석한다. 그런 내게 선뜻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서 무표정의 고독한 나는 무채색의 사람으로 살다 무채색의 죽음을 맞는 상상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상상을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2020년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어 가던 때였다. 5월 개강을 목표로 만든 그림책 하브루타 수업을 선생님들께 소개하고 피드백을 받으러 매주 안산에서 인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날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앉아 계셨고,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수업을 진행해 나갔다. 수업이 마무리된 후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 내게 한 분이 다가오셨다. '이 말을 꼭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수업이 정말 좋았어요.' 이만큼이나 완전히 나를 안심시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었던가. 이후 그 말 한마디는 10주간의 수업을 만들기 위해 뜬 눈으로 지새웠던 수많은 밤들을 밝히는 별이 되었다. 


그렇게 그분 또한 기대 없이 왔다가 10주간 수업의 스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만남은 내 인생을 바꿀만한 것이었으나 그때는 몰랐다. 소극적이고 유연하지 못한 나와 달리 빛나는 아이디어로 가득한 그분은 수업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고, 피드백도 아끼지 않았다. 내내 감사했다. 선뜻 다가와 수업이 끝나는 순간까지 격려해 줄 사람을 만날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혹평을 각오한 일이었다. 누군가는 사례를 받는 것도 아닌데, 적지 않은 사비를 들여 잠도 못 자며 대단치도 않은 수업을 만드는 나를 순진하고 미련하다 생각했을지 모른다. 맞다. 나는 내내 미치도록 괴로웠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수업들은 오히려 나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었다. 내 생애 이토록 부지런히 무언가에 몰입했던 때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서서히 변해가는 나의 내면은 덤으로 받은 선물이었다. 내게 그거면 충분했다. 그분도 같은 마음이었기에 10주간 진심으로 함께 했고, 그다음 학기부터 함께 수업을 만드는 파트너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함께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동지다. 동시에 나는 혼자가 아님에 안심하며 게을러졌지만 말이다. 


그림책 '두 사람'은 사람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들려준다. 두 사람에 대한 많은 이야기 중 색깔이 전혀 다른 두 사람에 관한 장면은 마치 그 분과 나의 관계 같아서 마음에 남는다.


'가끔은 색깔이 전혀 다른 사람이 함께 있기도 해요. 따뜻하고 즐거운 노란색과 서늘하고 진지한 푸른색이 만나면 따뜻하고 진지하면서도 즐겁고 서늘한 들판의 색깔이 나온답니다.'


나는 어쩌면 겉으로 보기엔 서늘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서툴고 수줍은 나를 발견하고 그래서 내가 좋다고 말해주는 그분의 따뜻함은 삶이라는 들판의 색을 물들이고 내 마음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렸던 많은 말들을 소생시켰다. 여전히 서툴지만 내 마음은 타인에게 조금씩 닿고 있다. 차가운 가면을 쓰고 있던 내게 닿았던 그분의 '좋았어요'라는 한 마디가 무채색 삶에 따뜻하게 물든 신비한 경험을 혼자서 끌어안고 있기엔 벅차서 타인에게 나누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조금 만만한 허당으로 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도 나는 그분의 충실한 동료로 옆에 있을 것이다.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일하는 우린 한쪽으로 나 있는 두 창문처럼 같은 풍경을 보여주기도 때론 다른 풍경을 보여주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같은 듯 다른 두 사람이라서 좋다. 


반면 그림책의 또 다른 장면은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떠나지 않는 한 사람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떤 두 사람은 지붕을 받치는 두 벽과 같아요.

서로 반대편에 서서 아무리 해도 가까워질 수 없어요.


원한다 해도 서로 가까이 갈 수 없답니다.'


내가 관계 맺음에 좀 더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잃지 않았을 인연이었다. 내 마음이 닿을 방법은 없지만 혼잣말처럼 끄적여본다. '왜곡되어 너에게 닿는 내 마음을 바로잡을 부지런함도 용기도 없어서 우리의 시간들이 의미 없이 흩어져 버렸음에 미안하다'라고. 지금의 나는 이 정도밖엔 할 수 없지만 훗날 좀 더 용기가 생긴다면 내 진심을 담아 이 그림책을 선물하고 싶다. 나와 너는 다르기에 더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것을 몰랐기에 멀어진 인연에 대한 회한은 성찰이 되어 타인이라는 밤하늘을 헤매는 내 삶에 이정표처럼 반짝일 것이다. 우리들은 함께여서 더 어렵고 함께여서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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