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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해야만 했을까?

마흔 살에 5년 남짓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다.

by 백수쟁이

월요일 아침, 사무실 책상이 아닌 내 방 책상 앞에 앉았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0분, 원래라면 지난주 마케팅 지표를 정리하며 주간 보고를 쓰고 있을 시각이다. 매출이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이번 주에 어떤 활동을 할지 쓰고 있었겠지.


5년 남짓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맞는 월요일이다. 원래 퇴사‘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이직을 하고 싶었다. 경기가 어렵다는 뉴스를 매일 같이 보았고, 작년에 이직을 준비하며 이 또한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는 무방비 상태로 그만 두면 다시 취업을 못 할 것 같아 두려웠다.


넘쳐나는 일에 허덕이느라 이직 준비를 할 여력이 없었다. 일은 쳐낼 새도 없이 쌓여만 갔고, 평일 근무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거의 매주 주말마다 출근했다. 실무를 모르는 대표는 AI로 업무 업무 효율을 높이라고만 했다. 마케팅의 여러 지표가 위험한 상황에서 대표와 내가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식에 간극이 너무 컸고, 좁히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일상도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하루를 메꾸던 소소한 루틴도 사라진 지 오래. 영양제 챙겨 먹는 게 버거울 지경이었다. 식사를 챙기는 것도 귀찮아 거르거나 배달 음식으로 대충 배를 채우기를 반복했다. 주말도 싫었다. 어차피 출근해야 하니까. 교회 나가는 것도 사치 같았다. 몇 주째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얼핏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에 한 몸 바쳐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렇게 사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10년, 20년 뒤 지금을 돌아보며 나는 이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려나. 계속 일한 나를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아니, 그럴 것 같지 않았다. 일상이든 일이든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이직을 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이직보다는 쉬는 것이 필요했다. 망가져 버린 일상을 먼저 돌봐야 했다.


”잠깐 보시죠. “


퇴근을 준비하던 4월의 어느 저녁, 대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마케팅 지표를 어떻게 개선할지,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리뷰하며 점검했다. 악의 없는 그의 조언이 끝나고, 퇴사를 말했다. 그는 당황한 눈치였다. 삼십 분 남짓을 퇴사로 실랑이를 벌였다. 대표는 나를 도울 방법을 말했다. 와닿지가 않았다. 지금 나는 마케팅을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고, 서비스나 조직에 대한 기대도 없으며, 그 어떤 것에도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상태였다.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이야기를 마쳤다.


퇴사는 ‘하고 싶은‘ 것이었는데, 당시 나로서는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 회사는 평생 나를 책임져 주지 않지만, 나는 평생 나를 책임져야 하니까.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절망 앞에서 나를 다시 건져 올려야 하고, 나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렇게 퇴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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