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출근 날의 기록
5월 30일 금요일, 마지막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다. 날씨가 화창했다. 몇 년간 매일같이 오가던 길, 늘 그렇듯 올림픽 대로를 탔고 늘 그렇듯 출근길은 막혔다. 이른 아침, 사무실에 도착해 가방 속 짐을 풀었다. 몇몇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며칠 전부터 준비한 카드와 초콜릿이었다.
PC를 켜고, 그동안의 흔적을 지웠다. 인터넷 사용기록과 나의 개인계정, 언젠가 다시 열어볼 것 같아 쌓아 둔 수많은 파일들. 며칠 전부터 틈틈이 정리했던 서랍 안도 다시 살폈다. 인수인계 문서에 빠진 건 없는지도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회사 메신저에 퇴사 인사를 남겼다. 좋은 서비스를 맡아 일한 건 행운 같은 일이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한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PC를 반납하고, 사원증도 반납했다.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동료들에게 인사했다. 끝내고 나니 점심시간, 몇몇 동료들과 마지막 점심을 먹었다. 너무 맛있게 먹어서인지 퇴사가 별로 실감이 안 나더라. 식사 후, 동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했다.
다음 주에 출근할 것처럼, 오늘은 모처럼 이른 퇴근을 하는 것처럼 퇴사하고 싶었다. 살면서 퇴사 경험도 여러 번, 언젠가는 너무 슬펐고 또 언젠가는 허무했다.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상처럼 퇴사하고 싶었고, 웃으며 헤어지고 싶었고, 좋은 감정만 남기고 싶었다.
친한 동료가 내 얼굴을 보더니, 오늘 해가 내 얼굴에 떴다고 했다. 일하는 동안 이렇게나 밝은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것. 정말 그랬다.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났고, 내가 봐도 내 얼굴이 생기 있어 보였으니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쉬움 없는 퇴사였다. 더운 한증막에 10분만 더 있다가 나가야지, 하고 참다가 나와서 찬물은 끼얹을 때처럼 개운하고 시원하더라.
퇴사하면서 동료들에게는 인사를 전했는데, 나 스스로에게는 전하지 못했던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