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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월 결산 #6월

회사 관련해서는 그리운 게 없는데, 월급날은 벌써 그립다.

by 백수쟁이

6월도 오늘로 마지막. 한 달 동안 스치듯 한 생각들 몇 가지를 모았다.


[충청도 여행 #예산]

6월 초에 다녀온 예산이 마음에 들어 지난 주말 시부모님과 다시 다녀왔다. 여행에서 돌아오며, 언젠가 서울을 떠나 다른 거주지를 정한다면 충청도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여행지를 고를 때면 이상하게도 충청도는 고려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가까운 편인데도 그랬다. 충청도하면 떠오르는 게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강원도나 부산을 생각하면 바다가 파아란 바다가 단박에 떠오른다. 대구하면 막창이나 떡볶이 같은 맛있는 음식이 떠오르고, 안동하면 하회마을이나 서원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 그런데 충청도하면 생각나는 게 없었고, 그러다 보니 여행할 생각도 못 했다. 다녀온 뒤 다행히도 충청도의 이미지가 생겼다. 충청도는 초록 빛깔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다양한 초록 빛깔이 나뭇잎에 밭 위의 작물에 한가득, 초록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이 차올랐다. 이 뜻이 아닌 걸 알면서도 충청이라는 말이 꼭 ‘충만한 푸르름’을 일컫는 것 같았다. 이제 충청도하면 초록색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충청도에는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많았다. 돼지 곱창도 한우 국밥도 그랬다. 조만간 초록의 향연과 맛난 음식을 즐기러 다녀와야지.


[벌써 그리운 25일]

내가 다닌 모든 회사의 월급날은 25일이었다. 월급이 너무 작고 귀엽다고 자조했지만, 그래도 월급이 좋고 월급날이 당연히 좋았다. 십여 년간 매월 기다리던 월급날 25일이 이젠 사라졌다. 남편 월급날은 25일이 아니어서 가족으로 따져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6월부터 회사를 안 나가긴 했지만, 서류상 퇴사는 아니었다. 못다 쓴 연차를 소진 중이었다. 6월 23일로 서류상으로도 퇴사하게 되었고, 25일에 마지막 월급을 받았다. 역시나 작고 귀여웠다. 당분간은 없을 월급날. 회사 관련해서는 그리운 게 없는데, 월급날은 벌써 그립다.


[한 밤에 나홀로 공원 산책]

6월에 하려고 한 일 중 가장 어려운 일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치과 가기이고, 나머지는 산책이다. 이 둘은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뤘다. 치과는 결국 7월에 할 일로 넘어갔고, 다행히 얼마 전 공원 산책을 했다. 남편은 야근으로 퇴근하지 못한 어느 밤에 한 시간만 걷자 싶어 집을 나섰다. 벌레가 많으면 어쩌지, 이 어두운 밤에 사람이 없으면 어쩌지 여러 걱정을 하면서. 두 걱정 중 하나만 맞았다. 벌레도 사람도 많았다. 달리는 사람들, 사람 혹은 동물 가족과 산책하는 사람들, 친구 혹은 연인과 데이트하는 사람들까지.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문득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한창 술 마시고 다닐 때는 세상 모든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니는 것 같았고, 집에서만 저녁 시간을 보낼 때는 남들도 다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공원에 와보니 세상에나! 모든 사람이 여기서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그러니 내가 어떤 환경에 발을 내딛을지 한 번쯤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도 좋겠다.


[여기에 사람 있어요!]

퇴사하고 놀란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낮 시간에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모든 시간과 생활의 중심에 회사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낮에 대중교통을 몇 번 이용했는데, 바보 같게도 낮 시간에는 버스도 지하철도 텅텅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출퇴근 시간에만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몇 번 이용해 보니 알겠더라. 출퇴근 시간대에는 회사원들만 타지만, 그 외 시간대에는 다양한 연령대와 다채로운 일상이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시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회사 다닐 때 시장에 잘 가지 못했다. 퇴근 후 시장에 가면 문을 닫았거나 닫을 준비를 하는 가게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대체로 회사원들은 밤에 퇴근하는데 왜 시장을 오전부터 여는 걸까, 오후부터 밤까지 장사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이따금씩 생각했다. 이 또한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낮에 시장에 가보니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어르신부터 주부, 아이들까지 다양한 모습이 이 시장에도 가득 있었다. 출퇴근 시간이 지난 대중교통, 낮시간의 시장에 회사원이 없다고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었다. 회사원만 없었을 뿐, 그 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보거나 경험하지 못했다고, 그 세상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내가 없는 곳에도, 안 보이는 곳에도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마흔 살이 되니 달라진 것]

예전에 서른을 앞두고, 먼저 서른이 된 아는 언니에게 물었다. 서른이 되면 뭐가 달라지냐고. 그녀는 음식 먹고 나면 이에 뭐가 잘 끼는 것 말고는 달라지는 게 없다고 했다. 싱겁다고 생각했는데 삼십 대 내내 그 말이 맴돌았다. 그 언니 말이 맞았거든.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되고 달라진 점을 요즘 부쩍 느낀다. 생리 현상을 못 참겠다. 화장실이 너무 자주 가고 싶다. 아침에 차나 커피 등을 마셔대서 그런 것 같긴 한데, 유독 심하다. 오늘도 남편을 회사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데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참느라 진짜 애썼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차키며 핸드폰이며 다 던져놓고 화장실에 갔다. 방귀도 잘 못 참는다. 참으려고도 끼려고도 한 게 아닌데 이따금씩 방귀가 뿡뿡 나온다. 처음엔 이게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이젠 그러려니 한다. 얘 또 왜 이래, 고장 났나 보네 생각하면서. 아무래도 그 언니에게 연락해야겠다. 그 언니는 작년에 마흔을 살았으니까, 내게 달라지는 점과 해결 방법을 분명 알려 줄 것이다.


[하루 빼고 다 쓴 모닝 페이지]

작정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계속 모닝 페이지를 썼다. 사실 아침에 일어나 모닝 페이지를 생각하면 그다지 유쾌하진 않다. 딱히 오늘은 쓸 말도 없을 것 같은데, 노트 지면은 너무 광활하니까. 그러면 세 줄만 쓰자고 나를 다독이며 펜을 든다. 신기한 건 펜을 들기만 하면 쓸 말이 생긴다는 거다. 아침에 정신이 들지 않은 채로 쓰는 글이라 노트를 덮고 나면 뭔 내용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노트 한 바닥을 다 채우고서야 끝난다. 꿈 얘기도 썼다가 누군가의 대화를 반추했다가 어떤 질문에 답을 써내려 가는 게 재미있다. 나는 글을 잘 쓰지는 않지만, 내 글을 좋아한다. 나중에 늙으면 지금 써놓은 모닝 페이지를 소설처럼 읽으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그러니 계속 꾸준히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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