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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Aug 12. 2019

#15. 보름간의 제주살이

7월 중순부터 약 보름간 제주에 머물렀다. 언젠가 타지에서 한달 살기 같은 것을 꿈꾼 적이 있기야 하지만, 그런 것을 경험해 보기 위해 정하고 간 건 아니었다. 친구의 제안으로 떠나게 되었고 다행히 머물 곳이 있어 최소 비용으로 다녀왔다.

지나고 나니 보름이란 시간이 짧게 느껴지지만 살면서 보름이나 타지에 머물러 본 건 처음이었다. 회사 다닐 때 가장 길게 쓰는 여름 휴가도 고작 일주일이었으니까.

집에 있을 때보다 부지런히 음식을 해먹었다. 갈릭 슈림프, 문어 숙회, 카레, 오므라이스 등등. 몸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친구는 매일같이 올레길을 걸었고, 나는 전망 좋은 커피숍을 찾아갔다. 커피숍에서 원고를 쓰기도 하고 일기도 쓰고, 책도 읽는 여느 일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가끔은 친구와 함께 걸었다. 사려니 숲길을 걷고, 우도 올레길을 걸었다. 여름이니 물놀이도 했다. 처음 같던 해변은 물이 얕아 아쉬웠는데, 지역 주민의 추천으로 찾은 해변은 물이 깊었고 스노쿨링도 할 수 있었다.

사실 제주에서 지낸다고 해서 여행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여행이 아니라 풍요로운 일상이었으니까. 그래서 집에서의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려 노력했다.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확인하고 스트레칭을 하는 일,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식사를 준비하는 일, 커피를 한 잔 하면서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정리하거나 일기를 쓰는 일, 기도하는 일 등을 빼먹지 않으려 했다.

제주에 있는 동안 날씨가 좋은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태풍 소식이 들려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고, 매일 아침이면 안개가 자욱했다. 여행이라고 생각했다면 날씨가 아쉽고 원망스러울 법 했다. 그러나 일상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날씨도 자연스러운 일에 지나지 않았다.

여행이 아니라고 일상이라고 생각해서 였을까. 서울로 돌아온 뒤 여독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왜인지 모르게 힘이 났다. 이 일상을 즐겁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긍정적인 힘.


그래서 요즘 나는 매우 잘 지내고 있다. 모든 것이 평안하다. 제주가 그립지도 않고 서울이 지겹지도 않다. 모든 것이 그냥 – 그냥 그런대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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