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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Dec 24. 2019

#17. 프로이직러의 삶, 다시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다

3개월의 수습 기간 후 새로운 회사에서 찾은 몇 가지

백수 생활 뒤 시작한 회사 생활. 회의감이 깊어질 때쯤 걸려온 전화 한 통. 예전 회사에서 함께 일한 사수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아직 입사 1개월도 되지 않은 신입, 이 회사도 녹록지는 않다. 


하지만 여러 회사를 겪으며 얻은 깨달음이랄까, 아님 포기의 마음이랄까 -

나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회사를 바라보게 되었다.


먼저 체계 있는 회사는 없다. 정말 작은 규모부터 중견기업까지 여러 형태의 회사를 다녔는데, 이것은 진리이다. 회사 = No 체계이니 더 이상 체계의 여부로 불만을 드러내지 않기로 한다.


또,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떠나는 나름의 이유가 있듯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내 관점을 어디에 맞출 것이냐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물론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마음도, 남아있는 사람들을 본받으려는(?) 자세 둘 다 겸비해야 할 테지만. 


녹록지 않아 보이는 회사이지만, 아주 귀엽고 소소한 장점도 몇 가지 찾았다. 


첫 번째는 영어 이름을 쓴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어떤 조직에서 영어 이름을 쓰는 것에 반감이 있었다. 영어 이름 자체가 별로라기보다는 우리 조직은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지향하여 영어 이름을 쓴다고 설명하는 것이 우스웠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면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정말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지향한다면 영어 이름이 아닌 우리 원래의 이름을 직함이나 직위 없이 불러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마음에서 반감이 컸는데 실제로 써보니 좋더라. 이유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느껴서가 아니었다. 이름 하나로 스위치 온오프가 되다는 것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쓰는 나의 이름은 예명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회사에서만 쓰이는 이름이고, 회사 밖으로 나가면 아무도 나를 이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 이름 하나로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의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는 출근 시각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8시 ~ 10시 사이, 본인이 원하는 시각에 출근하면 되는데 자율 출근제에 대해서도 사실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다. 예전엔 8시 반에 출근해야 하는 회사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나름 좋았다. 여러 회사에서 출근 시각이 이르면 이른 대로, 또 늦으면 늦는 대로 적응을 잘했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정한 출근 시각은 10시. 사실 마음 같아서는 8to5로 일하고 싶지만 우리 팀 팀원들이 모두 10시에 출근하니 업무에 이것이 좀 더 효율적일 것 같아 암묵적으로 따르게 된 시간이다. 10시 출근은 직장 생활 중 처음인데, 꽤 좋다. 아침에 여유가 생겼다. 아침 스트레칭과 묵상, 아침 식사와 청소까지 하고 난 뒤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하철에도 여유가 생겼다. 9호선을 이용하는데, 이 시각에 출근하니 가끔은 앉아서 출근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점심 식대가 나오고, 구내 식당이 있다. 난 여태 '점심' 식대가 나오고, 구내 식당이 있는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다. 그리고 회사 생활을 할 때면 점심을 늘 걸렀다. 이유는 다양했다. 점심 식대로 야금야금 나가는 돈이 아깝기도 했고, 매일 메뉴 고민을 하는 것도 귀찮기도 했고, 점심 시간 한 시간이라도 나만의 시간이 절실하기도 했다. 그렇게 약 5년 동안 난 회사 생활 중에는 점심을 먹지 않고 살았다. 이제는 밥 먹으라고 돈도 주고, 식당도 있는데 거를 이유가 없어진 것. 그래서 요즘은 매일 점심을 먹는다. 문제라면 점심을 이렇게 먹는데도 퇴근 시각 즈음엔 배가 미친 듯이 고프다는 것...!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입이라 내가 무얼 알고 모르는지도 모르고,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지만 요즘 나는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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