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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Jan 16. 2020

#20. 집순이가 집에서 절대 하지 않는 다섯가지

내가 이 집에서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산지 3년차. 3년 전, 이맘 때쯤 새해 계획은 ‘독립’이었다. 모아놓은 돈도, 독립을 추진할 여유도 충분치 않았는데 어쨌든 지금 혼자 살고 있다. 멍 때리다가 내가 이 집에서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집에서 하지 않는 것들을 먼저 이야기 해보려 한다. 
 
 [집에서 혼술하기]
 ‘혼술’이란 단어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나는 혼술을 좋아했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혼술을 했다. 국밥에 한 잔은 기본, 고깃집에서도 혼술을 했다. 독립을 하고 나서 집에서 이따금씩 혼술을 하곤 했다. 작년에 백수로 지낼 땐 매일 혼술을 한 적도 있었다. 맥주 취향을 찾겠다는 목적(?)으로 참 다양한 맥주를 마셔댔다. 그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매일 술을 마시니 다음 날 아침 배가 계속 아팠다. 또 술 때문인지 곧잘 기분이 센치해졌다. 몸도 정신도 시들어가는 느낌에 어느 순간부터 맥주 취향 찾기를 중단했고, 지금까지도 집에서는 혼술을 하지 않는다. 술을 계속 마시는 것도 버릇이라 생각했는데, 술을 안 마시는 것도 버릇이 되나보다. 이제는 집에 어쩌다 술이 있어도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기상 후 침대에 다시 돌아가기]
 이불 밖은 위험해! 부모님과 살 때는 그랬다. 이상하게도 침대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일어나고 나서도 자석처럼 침대에 착-하고 달라 붙었다. 밥 먹고 나서, 책 볼 때, 포카칩을 먹을 때, 웹서핑도, tv도 모든 것을 침대 위에서 했다. 자취를 하고 나서는 달라졌다. 의식적으로 침대로 가지 말아야지, 했던 것은 아니다. 좁은 원룸에 헝클어진 침대가 보기 싫어 일어나자 마자 이불 정리를 하다 보니 습관이 된 것 같다. 정돈된 이불을 다시 파헤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것이다. 
 
 [침대에서 음식 먹기]
 기상 후에 침대로 갈 일이 없으니 침대에서 음식 먹을 일도 없다. 가끔 SNS나 유튜브 영상에서 침대 위에서 음식을 올려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음료를 쏟으면 어쩌지, 침대에 부스러기를 흘리면 어쩌지, 이런 생각에. 깔끔을 떠는 성격이 아닌데도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인지 침대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배달 음식 먹기]
 나는 입이 짧다. 한 가지 음식에 쉽게 물리는 편이다. 그런 내게 배달 음식은 양이 너무 많고 금방 물린다. 1인1닭이 공식인 것처럼 통하던 때도 있었는데 난 그 말이 그저 신기했다. 어떻게 혼자서 닭 한 마리를 먹는 거지? 나는 닭 한 마리를 혼자서 다 먹어본 적이 없다. 내가 먹는 양이 적어서가 아니다. 금방 물려서 못 먹는 것이다. 그래서 배달 음식을 시키면 항상 음식이 남는다. 그러면 아까워서 버리진 못하고 냉장고에 넣어둔다. 다음 날이 되어도 어제 물린 음식은 먹기가 싫다. 그래서 음식을 냉장고로 보낸다. 그리곤 그 음식이 있는 걸 까먹고 몇 달이 지나서야 버린다. 이 짓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배달 음식이 나랑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배달 때문에 무서운 일도 있었고.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배달 음식을 먹지 않는다. 
 
 [개 키우기]
 세상에서 사람이랑 개 빼고는 살아있는 건 다 무서워서 싫어, 이런 생각을 품고 사는 나는 개만큼은 참 좋아한다. 자취를 한 뒤 개를 분양 받고 싶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했다, 아니 지금도 한다. 하지만 난 아마 죽을 때까지 개를 키우지 못할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가 외로울까봐, 이 이유가 가장 크다. 나도 이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가끔은 눈물 날 정도로 외로운데, 가끔 지인들이 놀러 왔다 돌아가면 그땐 마음이 더 헛헛해지고 외로움이 커지는데. 개를 키우면, 매일 집을 나서야 하는 나를 보며 그 개는 이 외로움을 일상으로 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개와 함께 살려면 깔끔하고 섬세해야 하는데, 난… 그렇지 못해 함께 할 엄두가 안 난다. 
 




 생각해보면 나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만 유의미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집에서 하지 않는 것들을 나열해보니 ‘하지 않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열거한 내가 하지 않는 것들은 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나는 나의 삶의 방식일 테니 말이다. 앞으로는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좀더 유심히 들여다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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