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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Jan 14. 2019

#8. 왜 퇴사하셨어요?

퇴사 이유가 긍금한 면접관에게 전한 나의 답변

지난주, 두 건의 회사 면접 자리가 있었다. 채용공고를 보다 마음에 드는 회사가 있었다. 퇴사 후 휴식과 재취업을 두고 많은 고민이 되었지만 내가 원하는 시기에 마음에 드는 채용공고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일단 지원해보기로 했던 두 곳이었다. 감사하게도 두 군데 모두 면접 제의가 왔다.


여태 취업을 앞두고 면접 준비를 해본 적이 없다. 면접 준비의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도. 이번에는 달랐다. 퇴사 후 긴 휴식이 사라질지도 모름에도 지원했다는 건 그만큼 가고 싶은 회사라는 것, 그래서 면접 준비를 했다. 준비라 해도 별건 없었다. 예상 질문을 리스트 업하고 답변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재직 중에 보는 면접이 아니기에 퇴사의 이유를 질문할 것 같았고, 역시 그랬다. 그래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퇴사한 진짜 이유.


몇 가지 현상들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업무, 갑작스러운 승진으로 기쁨보다는 어리둥절한 마음이 먼저 들었던 일, 업무 논의를 하며 들었던 CEO의 피드백 등. 이런 현상들을 놓고 진짜 문제가 뭐였을까, 하고 생각하고 정리했다.


먼저 나는 ‘가고 싶은’, 혹은 ‘일하고 싶은’ 회사 같은 것이 없었다. 어느 정도의 직무와 연봉만 맞으면 (그리고 나쁜 일만 아니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회사를 다녔다. 연차가 낮았을 때니 어떠 어떠한 회사보다는 경력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할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다. 이성에 관해서는 이상형이라는 것도 있고, 삶의 방향에 있어서는 롤모델이라는 것도 있는데 왜 회사에 관해서는 그런 것 없이 너무 기본적인 것만 보고 선택을 해왔던 걸까. 그러고 나서는 회사에 불만을 갖고, 조직문화를 못마땅해 하는 걸까. 그래서 회사에 대한 나만의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첫 번째,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이다. 많은 회사가 자율적이라거나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갖추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필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덜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회사의 조직문화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러니까 ‘나에게는’ 그런 조직문화를 갖춘 회사가 좋겠다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어야 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조직문화에서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회사 혹은 사업의 비전이 실무자들에게 ‘공유’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조직이 유리병이고, 직원은 유리병에 담긴 각양각색의 돌멩이, 그리고 비전은 모래알이라고 말이다. 비전, 그러니까 모래알을 유리병에 담으면 모래알이 돌멩이 틈을 메운다. 모래알 전체가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아도 직원 사이 틈틈이 메우는 것, 그것을 공유라고 생각했다. 물론 비전이 공유되지 않아도 일할 수 있다. 그렇게 일도 이미 여러 차례 해왔다. 다만 나라는 직업인은 비전이 공유되는 곳에서 일할 때, 동기부여가 되어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번째, 직원과 회사를 놓고 보았을 때, 서로가 비슷한 깊이와 넓이로 서로 이해하는 것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나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은 회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사업을 왜 하는 거예요?’, ‘이걸 왜 저희가 해야 하죠?’라는 질문은 따지는 게 아니다. 회사를 이해하기 위한 적극적인 몸부림, 즉 노력의 행위이다. 직원들이 회사를 이해하기 위해 질문하고, 논쟁하고, 일을 하는 것처럼 회사도 직원을 이해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면 좋겠다. 그래야 나는 내 일에, 내 조직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퇴사를 한 건 이런 가이드라인 때문이었다. 이렇게 글로 정리하거나 전 직장에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런 생각을 놓고 전 직장을 보았을 때, 어느 것 하나도 충족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 직장을 다니면서 가이드라인에 맞는 회사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랬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더 이득이라는 것을 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만. 월급이 가져다주는 안정감 하나만으로는 이제는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생각, 이 이야기를 들었던 면접관은 어쩌면 내가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상적이다. 회사에 관한 내 이상형이니까. 이런 이상형이 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를 찾을 때 이정표가 되어주리라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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