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자기 자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이 세상의 유일한 생명체일 것이다. - 조쉬 빌링스
경험상, 모든 개가 나쁘지 않 듯 모든 개가 주인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조쉬 빌링스가 누구신지 몰라도 좋은 개를 반려견으로 둔 듯하다.
늦둥이 딸내미가 학원에서 그림을 그렸다.
딸내미 최근 그림 중 가장 마음에 든다. 학원 원장님의 [개]입양 스토리를 듣고 그렸다고 한다. 딸내미가 말하길 투견으로 고생한 개를 원장님이 입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개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머리에 꽃을 그렸다고 한다(누굴닮아 그런생각을 하지? 느그 아부지는 그런 생각 못하고 살았는데?).
그래서 작품명을 “꽃개(Flower Dog)”라고 했다.
어린시절 개들이 생각난다. 70년대만 해도 영어를 한국식으로 표현한 개 이름이 유행했다. 대표적으로 뽀삐(puppy)가 있다. 쫑은 Jhon이었다. 그나마 원음이랑 비슷한 것이 메리(mary)였다. “메리 메리 쫑쫑” 이라는 말로 개를 불렀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메리가 존을 집착하는 듯한 어감이라 이상하게 여겨진다(그만큼 스토킹이 사회문제가 된 것일 수도).
우리집도 개가 있었다.
"독구"
아마도 영어로 Dog를 한국어로 독구라고 표기한 것 같다. 목은 짧고 능글능글 맞아서 언제나 나를 보면서 웃던 개다. 목줄을 해놓아도 목이 짧고 굵어서 힘들이지 않고 바로 탈출가능했던 개 였다. 하도 그런 일들이 반복되기에 나중에는 포기하고 그냥 마당에 풀어놓고 살았는데, 대문 밑으로 기어나가 동네에서 한 참 놀다가 들어오곤 했다.
몇 년을 키웠는 지 기억나지 않지만 독구와 나는 그리 나쁜 사이는 아니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구도 나를 보면 언제나 웃어주었고 나는 언제나 그 친구 밥을 챙기느라 신경을 썼었다.
그러나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돌아와보니 독구가 없었다.
갑자기 기분나쁜 느낌이 들었고 예상대로 기분나쁜 일이 일어났다. 할머니가 독구를 지나가던 쓰레기 아저씨(폐지줍는 넝마주이)에게 주었다고 했다. 일제시대 사람이었던 할머니는 “개는 3년간 키우면 요물”이 된다는 북유럽 켈트족의 드로이드 신앙같이 동물신을 믿고있는 기독교 신자였다.
그래서 오래키우면 안된다고 정들만 하면 사지로 내모셨다. 그 날, 누나와 나는 독구를 찾으려고 한 참을 해매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넝마주이 아저씨가 대려갔다면 분명 2일내에 건강보양식이나 회식용으로 쓰일 것을 어린나이에도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분이 풀리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사람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는데, 동물에 대한 촉감, 눈빛, 냄새와 그리움은 몸 속 어딘가에 평생 남아있다. 요즘이야 개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개를 방안에서 키우면 죽도록 욕먹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니 70년대는 오죽했겠는가? 개를 키워서 먹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이 말을 가끔 딸내미에게 하면 “많이 신기해하면서 즈그 아빠의 분노”를 보며 복잡한 감성을 느끼는 것이 느껴진다. 딸보다 개나 고양이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여하튼, 70년대 영유아기를 보낸 나에게 개나 고양이는 천대받는 가족같은 존재였다.
(*) 70년대 전세계 유아들에게 벤지는 최고의 친구이자 우상이었다. 벤지 닮은 개만 봐도 넋놓고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저렇게 생긴 개를 지나가다보면 "벤지!"라고 마음 속에 웅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