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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tage appMaker Jul 23. 2023

그들이 수필을 쓰는 이유

digilog #96

드로잉 툴: infinite painter - android


그들은 왜 수필을 쓸까?


블로그나 SNS 또는 브런치의 포스팅 중에는 우리사회에서 부러워하는 전문가 집단 출신이 적지않다. 그런데 가끔은 의아한 글들이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 집단은 브랜딩을 위해 글을 생산해내지만 몇몇 사람들은 “수필”에 더 집중한다. 그럴 때마다 궁금해 한다. “일하고 공부할 시간도 모자를 터인데 왜 신변잡기식의 글을 저렇게 정성스럽게 쓰지?” 


글이 치유가 된다? 무엇을 치유한다는 것이지?


누군가 그랬다. “글이 치유가 된다”. 그럴 때마다 궁금해 한다. “뭘 치유한다는거야? 치유를 하려면 병원에 가야지 왜 글로 해?”. 이런 말을 하면 당황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당연하다는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유는 글에 대한 관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로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과 글로 감성을 만드는 사람에게 “글”이라는 단어는 음운만 같을 뿐,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쪽 사람들에게 글은 긴장과 스트레스의 대상이다. 그들의 일상에서 만나는 글은 “긴장해야할 대상”이다.  치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경쟁, 비교, 우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STEM쪽 사람들이 수필에 진심인 경우를 종종본다. 어쩔때는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들이 만든 또 다른 자아에서 “예술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을 해본다. “힘들 게 쟁취한 딱지가 내 영혼의 향기와 다름”이면 어떤 고통일까? (1)보상에 대한 불만족 그리고 주위에 (2)행복하게 사는 사람과 비교, 결국은 (3)우울하지 않을까?  심지어 내 감정과는 무관하게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자랑거리로 만들어버린다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시선을 밖으로


나 또한 그럴듯한 지인들을 가지고 포켓몬 싸움을 즐겨한다. 내가 자랑거리가 될 경우는 싫어하지만(히어로 수준이 못되기에 싸이코 또는 빌런 캐릭터로 애용된다) 술자리 친구배틀에서는 그들을 적극 활용한다. 오래 전에 당사자들에게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포켓몬으로 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중 국립대 교수하는 친구가 많이 불쾌해 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 하루사는 것이 똑같은데 왜 불편하게 그러는 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는 지인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우리 선배가 OO 국책연구소에서 OO을 포기하고 이민을 갔어. 그런데 이민가서 뭐하는 줄 알아? 박스접어. 박스접는 것이 너무 행복하데, 자기한테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고 시간도 많이남고 해서 휴일마다 차 끌고 낚시 다니고 있대…그게 너무 행복하데.. 그렇게 힘들게 공부했는데...버리고...그리고 미국은 박스만 접어도...먹고...”  


결과적으로


원흉은 “남과 비교하는 사회”이다. 문제는 이런 사회를 탈출하고 이민을 가서도 그곳에서조차 비교하며 문제를 일으킨다. 내가 아는 지인들도 한인회는 믿고 거른다는 표현을 할 정도이다. 서로가 비교하는 순간 헬게이트는 열린다.  


이런 이유로 남의 눈으로 살아야했고 힘들게 쟁취했지만 만족하지 못해 우울해 하는 사람들에게 글은 “포기할 수 없는 나”를 지키는 도구이다. 결국 글에서 치유가 되는 것이다. 반면 “남의 눈에 관심없던 인생”은 글로 치유될 것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무접점 키보드 구매 가능한 “경제적 치유(원고료)” 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내가 1000~2000자 내외의 글에 집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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