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log #153
10월이 되면 calendar의 자릿수가 2개로 업그레이드 된다. 그럴 떄마다 올해도 몇 달 안남았네?라는 생각을 하며 되돌아보게 된다.
무엇이 되고 싶은
사람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보다
우울증이 걸리기 쉽다.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관점”이 강하므로
자신의 의지로 해결가능하지만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은
”남들의 관점”이 강하므로
남의 평가에 따라
공든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이 “되고싶고”
존경받는 전문가가 “되고싶고”
넘사벽 회사의 직원이 “되고싶고”
권력있는 사람이 “되고싶고”
정작 되고 싶은 것에
모든 인생을 걸다보면
”하고 싶은 것”에 관심을 가질 수 가 없다.
동요의 내용을 보면 동생이 다른사람에게 어떻게 불려지는 것이 중요할 뿐, 정작 동생이 뭘 원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동생의 삶은 불려지는 것에 노예가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만족도로 살게 될 것 이다.
여담: 어린시절부터 학문과 조직의 권위를 개무시했던 내게 “너는 사악한 자본가가 될 것 같다”라고 말한 누나(많이 배운)의 조언이 있었다. 그 때 누나의 프레임에 무관심했기에 평범한 50대의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그 때를 생각하며 난 누나에게 뭐라고 디펜스 했었지?를 회상하니 “돈 쓰는 공부 좀 그만하고 빨리 시집이나가!”라고 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 누나가 벌써 60대라니, 인생은 너무 짧다. 우리모두 하루를 웃으며 즐길 줄 모르는 바보들일 수도 있다.
지난 9월은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메모를 정리하며 세상의 눈을 무시하며 채워간 욕망의 흔적들을 되새김해본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만이 이해할 뿐
남들은 고뇌를 모르는 것이 아닐까?
일반 민초들이 사이타마의 고뇌(취미로 히어로를 할 뿐)를
이해못하듯 말이다.
- 난 이해한다. 남 이야기 같지 않아~(from P)
그러니 남에 눈에 목숨거는 삶을 사는 것만큼 잘못된 투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