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log #173
처가와 연을 맺은 지 조만간 20년이 되는 시점에서 “귀성(歸省)”이라는 말은 체감하기 힘든 단어였다. 결혼하기 전에 처가 쪽 서울식구들이 귀성 때 자동차 전복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가족이 모여서 귀성하는 것을 장모님이 극구 말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명절을 전후하여 부산이 아닌 중앙지대(충청도)에 팬션을 얻어 대가족이 모이는 것으로 가족문화를 만들었었다.
그렇게 수십년을 살다가 올해 장모님이 돌아가신 후, 추모식을 위해 부산을 거쳐 합천에서 모이기로 했다. 문제는 “지옥의 귀성(경)타임을 잊고 살았다는 점이다.
23시간의 이동거리에서 느낀 점은 왜 사람들이 명절이동만 되면 “지옥같은”이라는 표현을 쓰는 지 체감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동거리와 시간은 1일이 아닌 4일에 걸친 내용이지만 “조국의 국도탐험(고속도로 비싼 이유가 있었음)”을 하며 “매드맥스 시리즈”가 생각나는 이유는 분노가 원인이 아닐까한다.
귀성, 귀경을 하는 동안 잠깐의 [개인시간]이 날 때마다 [분노의 도로]같은 마음을 잠재우고자 메모를 남겼다.
생성 AI가 “생산적 기능”을 제공하기 시작했던 작년 하반기부터 “업무자동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빅테크들이 경쟁하며 내놓는 솔루션들이 너무 재미있다보니 머리 속에 감성이 들어갈 자리까지도 “프롬프트와 아키텍쳐와 소스코드”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AI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많은 메모를 하며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고속도로 맛집을 찾다보니 “칠곡”이 나왔다. 태어나서 칠곡이라는 명칭을 몇 번 들어본 기억이 있기(개인적으로 칠곡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귀곡산장이 생각난다. 이유없다.)에 칠곡 휴계소에 들어가서 맛집에 가서 음식을 시켰다. 2개의 돈까스를 시켰는 데, 딸래미 것은 누가보아도 맛있는 돈까스였다.
반면 내 돈까스는 커팅부터 느낌이 “싸~했다”. 딱딱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한 입 먹는 순간 “차가움”을 느꼈다. 돈까스가 차가울 수 있나? 그 때 처음 알았다. 차가울 수 있다. 재대로 만들지 않으면…
여하튼, 고속도로에 있는 음식점임을 감안하면 SOSO했다.
문제는 내 이빨 건강상태가 안좋았던 지라 먹을 때는 몰랐지만 먹고나서 고통이 시작되었다.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시아거리가 좁아진 상태에서 치통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부산 남구에 도착해서 “타이레놀 500”을 편의점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처가형님네 들렸고 인사를 잠깐 드린 후, 바로 잠에 들었다. 문제는 합천의 백두혈통을 타고난 가족들의 대화는 서울의 데시벨과 비교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잠을 자면서도 계속 고통을 느끼고 잤다.
스타벅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가성비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처가에 가면 스타벅스에 들린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대학캠퍼스를 쳐다보는 것도 재미있고 넓직한 장소도 좋기 때문이다. 단지, 가성비를 생각하면 글쎄?라는 생각이 든다. 부산은 투박하지만 거칠고 거칠지만 정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가 외에도 우리 어머니쪽 부산친척들도 그랬고 대부분의 부산사람들은 뭔가 거칠면서 정이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의 상남자를 대적할 자들은 부산에 있지않을까 한다.
부산에서 합천까지 3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리고 합천에서 장모님을 뵈러 갔다. 비가오는 와중에도 20명에 가까운 대가족들은 장모님을 뵈러 야산을 올라갔다. 허리아픈 70대 큰 형님까지 성묘를 왔다. 웃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사라질 즈음, 예상대로 마누라가 장모님 묘소에서 혼자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을 보았다.
조용히 다가가서 안아주었다.
이 여자는 20년 전 그 때보다 더 매력적인 것 같다.
단지 아쉽게도 몸은 그 때보다 140%~150% 정도
width로 증가한 것이 문제이다
(height가 늘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치통으로 인해 시끄러움을 참지못하고 우중에 차 안에서 잤다. 그리고 허리를 다쳤다.
합천에서 하루를 자고 새벽에 보는 합천댐은 나름 볼 만했다. 합천에 볼 것있나?라고 합천 사람들이 말을 하지만 뒤져보면 볼 것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황매산 공원에 들려서 가족들이 구경갈 때, 나는 차 안에서 허리를 아프지 않게 조율했다. 그리고 황매산 공원에서 합천의 영양간식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합천에서 서울귀경만 10시간 좀 넘게 걸렸다. 그리고 총 23시간의 로드트립을 마치면서 마누라에게 한 말이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그리고 3일 동안 앓아 누웠다.
며칠 동안 비가 하루종일 왔다. 잠시 맑은 하늘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비와 안개가 머리 속에 남아있다(사일렌트 힐?). 지난 며칠을 생각해본다. 가족의 의미와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면서 상념에 젖게 된다. 모두가 30대가 되어버린 처조카들과 그런 나이많은 오빠들과 잘 어울려주는 사춘기 갱스터 같은 딸래미. 어느덧 70대에 가까워지는 형님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조만간 할배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생각이 깊어진다.
아직 할리데이비슨으로 천조국의 동서고속도로를 주행하지 못한 인생이건만 어린시절 꿈은 희미해지고 머리색은 반백을 넘어가니 억울함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