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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득 Mar 17. 2024

240317

 어릴 적 거닐던 시장과 많이 닮았다. 골목을 들어서면 고약한 젓갈 냄새를 피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여긴 그런 냄새는 없다. 싫어하는 냄새뿐만 아니라 어떠한 향도 없다. 정신없이 바뀌는 시점 탓에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다. 나는 소리 없는 뻥튀기를 파는 장수가 되었다가 어느새 손님이 되어 그것을 사고 있었다. 그 모든 모습을 찍는 드론이 되기도 했다. 게임으로 치면 배경 데이터를 불러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세계관이 정해진 것 같다. 다행인지 이곳의 나는 성인의 몸을 가지고 있다. 슬리퍼를 신은 채 어느 가게 앞에 떨어졌다. 가게의 외관은 익숙지 않았지만 나는 내부의 구조를 알고 있다. 아마도 2층이 있을 것이고 그곳은 침대가 놓여있는 생활공간일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난 2층에서 자본 적이 있다고 확신한다.


 바닥의 벽돌은 구석구석 깨진 흔적이 보인다. 사이에 끼어있던 모래는 여기저기 새어 나왔고 그 자리에는 잡초가 대신 끼어있다. 내 몸은 당연하다는 듯 슬리퍼를 벗었다. 벗었다기보다는 슬리퍼에서 내려왔다. 머리로는 다시 신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생각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그러자 털이 많이 달린 벌레가 발가락 주변 돌아다니며 위협했다. 몸이 굳은 것인지 위협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슬리퍼를 다시 신으려고 생각은 했지만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가게로 들어가면 벌레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또 이번에는 몸이 말을 들었다. 이상하다는 생각도 잠시 아니나 다를까 가게 내부는 상당히 더러웠다.


 바닥은 나무 재질이며 벽도 대체로 목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홍수라도 한번 난 것처럼 흙냄새가 가득했다. 모래도 까슬까슬하게 발에 스쳤다. 이젠 맨발도 별로 불편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까 예상한 것처럼 가게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멀리 계단으로 향하는 문이 살짝 열려있었을 뿐 다가갈 수는 없었다. 가게 바닥에는 작은 책장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위에는 할 일이 적힌 노트가 있었다. 내용을 열심히 읽다 보니 이미 한 일들이 많았다. 한 두 개만 더 하면 오늘 할 일은 다 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한참을 집중하다 노트를 다시 내려놓았다. 그 옆에는 은박지로 포장된 초콜릿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은박지를 벗겼다. 초콜릿은 이미 핑크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곳의 특성상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상했다는 뜻이다. 평소였다면 바로 버렸을 테지만 어째서인지 한 입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느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노트에 적힌 할 일 중에는 초콜릿을 먹어치우는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닐 수도 있다. 일단 먹어보고 확인하면 되지 않겠는가. 한 입 크게 베어 물었고 나는 새로고침 되었다. 다시 가게 밖으로 나왔다. 다만 이번에는 누워있었다.


 머리맡에는 핸드폰이 있었다. 정말 내 것이었다. 충전기도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선은 팽팽하게 하수구로 연결되었다. 일어나서 하수구를 들여다보니 담뱃갑에 연결되어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담뱃갑을 꺼내 열어보았다. 그리고 충전기를 뽑았다. 담배는 이미 젖어서 축축했다. 점박이처럼 물방울 자국이 있었다. 초콜릿의 상한 자국과 비슷하게 말이다. 담배를 피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라이터도 없었다. 담배를 그대로 바닥에 내려두고 충전기를 챙겼다. 그런데 담뱃갑에서 연기가 피어 나오기 시작했다. 당황할 새도 없이 연기는 자욱해져 눈앞을 가렸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연기는 어떤 향도 없었고 눈이 맵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물이 흘렀다. 몹시 무언가가 그리운 듯이 펑펑 울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참을 울었다. 내 울음소리가 점점 페이드 아웃되었고 다시 몸의 주도권을 잃어갔다.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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