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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쭉이 아빠 Sep 10. 2020

아지트에 아빠도 초대해 줘

아빠가 딸에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요즘 아쥐니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숨바꼭질이다. 엄마품에 안겨 방문 뒤에 숨는다. 문 뒤에 숨었으니 안 보일 텐데 손으로 눈을 꼭 가린다. 눈만 가리면 자기 모습도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지 꽤 진지하다. 아이가 어디에 숨었는지 뻔히 알고 있는 나는 "아쥐니 어디 있나?" 하고 불러본다. 괜한 노크 소리에 자지러지게 웃는 아이. 그 모습이 정말 아이답다.

어둡고 좁을 것. 아무도 모를 것. 어린 시절 나도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할 때면 그런 곳만 찾아다녔다. 우리 집 다락방이나 공터에 쌓여있는 목재 더미 사이가 딱 좋았다. 가까이에서 친구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려서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 스릴감이란... 놀이동산 귀신의 집보다 훨씬 강렬했다.

그렇게 찾아낸 공간은 나만의 비밀 아지트가 됐다. 뽀얗게 쌓인 먼지 속에서 숨겨둔 과자를 먹거나 만화책을 읽기도 했다. 사촌 동생을 공터 목재 더미 아지트에 초대해 모닥불을 피웠다가 큰 불이 날 뻔도 했다.

또 기억나는 건 서늘한 공기와 쿰쿰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괘종시계 초침 소리가 들릴 만큼의 고요함이다. 혼자 있을 땐 좀 외롭단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거기서 어떤 생각을 했는진 구체적으로는 기억나지 않지만 재미난 상상을 많이 했었다. 주로 모험 같은 이야기들... 그래서 나에겐 무척이나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다락방 모험은 부모님이 집에 들어오셔야 끝이 났다.

세 살 아쥐니도 이제 상상하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 같다. 눈을 감고 '저기쯤 아빠가 왔겠지?'하고 생각하니 웃음이 터졌을 것이다. 그리고 더 자라면 나처럼 자신만의 아지트도 생길지 모른다. 그 아지트에 아빠도 초대해 줬으면 좋겠다. 그 정도로 아쥐니에게 친구 같은 아빠이고 싶다.

#육아 #숨바꼭질 #아지트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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