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없다면, 윤회하는 건 무엇일까요?

by 관음

불교에서는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무아, 제법무아, 오온개공 같은 말.

이 말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쉽게 나옵니다.

“본래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바로 깨우쳐야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문장을 들으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미묘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나’가 없다면,

윤회하는 주체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대화는 보통 멈춥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몸과 마음이 윤회한다고.

오온이 흘러간다고.

업이 이어진다고.

말은 많아지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윤회한다면,

그 몸과 마음은 누구의 것일까요?

오온이 이어진다면,

그 오온은 무엇을 기준으로 이어질까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만약

‘내가 없다’는 것을 정말로, 오롯이 알았다면,

윤회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윤회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는

이미 아주 분명한 전제가 들어 있습니다.

벗어날 ‘누군가’가 있고

그 누군가가

지금은 윤회 안에 있다고 여기는 전제입니다.

즉,

말로는 “나가 없다”고 하면서

관심과 질문은 여전히

‘나의 윤회’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이 지점에서

‘무아’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아는 말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윤회에 대한 질문은 계속 생기고,

윤회를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정말로

‘나’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자리에서는

윤회에 대한 의문도,

벗어나고자 하는 집착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때는

윤회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윤회를 묻고 있는 주체 자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처가 말하는 해탈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가장 걸렸던 지점은 어디인가요?

- “나”가 없다는 말?

- 윤회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걸린 문장 하나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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