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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다. 타이핑이 즐거워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대체 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지금 이 순간의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현재 글쓰기보다 더 재미있는 활동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 백, 수 천종류는 족히 되는 TV 프로그램과 유튜브 영상은 내게 별로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에너지가 고갈된 경우 큰 생각 없이 예능을 보며 즐거워할 수도 있겠지만, 쉬어야 할 만큼 힘을 쓰지 않았고 그렇게 흘려보내기에는 하루가 아깝다. 뭣보다 볼만한 채널을 탐색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시력이 아깝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독을 사랑한다. 수동적으로 외로움 속에 던져진 게 아니다. 홀로 머물기 위해 고독을 택했다. 이 고요함 속에 나는 글을 통해 내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고독은 좋은 것이지만 생활 속에 내가 원할 때 고독해질 수 없는 경우가 많기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선용하고자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글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생을 살고 싶다. 수많은 취미 중 하나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 글이라는 가능성의 문을 통과해보고 싶다. 이 문은 그리 넓지 않아서 여러 종류의 가능성을 모두 짊어지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럼에도 문 안쪽에는 무엇이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내게 있는 수많은 가능성의 문을 하나씩 닫고, 소중하게 골라낸 글쓰기라는 동료를 데리고 저 먼 곳까지 가 보고 싶다. 좀 더 글을 사랑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글쓰기를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글쓰기란 참 오묘한 것이다. 잘 쓴다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얘기하기 어려우며,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도 이야기하기 어렵다. 아무리 저명한 저술가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글을 보고서 이 사람이 글을 써도 될지 안될지 판단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잘 쓴 글이란 것은 굉장히 주관적이다. 글은 어쩌면 쓰는 이 저마다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인생 모두가 각자가 써야 할 만큼의 분량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 분량은 저마다 다를 것이며, 각 사람이 결국 써내게 될 글도 다를 것이다. 글로 내 분량을 채우고, 그 분량 너머에 올 나의 글을 찾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조금 불안하기 때문이다. 단순 취미도 아니요, 글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쓰고 싶다고 했지만 무엇이 잘 쓰는 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어 불안하다. 얼마나 글을 써야 남은 분량을 채우고 한층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불안하다. 연마하면 금세 티가 나는 다른 기술들과 달리, 글쓰기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겉으로 보기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때로 제자리걸음을 하는듯한 불안함에 빠진다. 그래서 더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글을 쓰는 일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취미로도 글을 쓰지 않아야 한다. 글을 진심으로 쓰지 않을 생각이면 아주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글을 사랑하는 만큼 나는 불안하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나와 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주일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다. 나를 찾는 전화벨도 울리지 않고, 아내는 곤히 잠들었다. 무엇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아 부지런히 타이핑하는 ‘나’라는 존재에게 말을 걸고 싶다. ‘너’는 누구니? 왜 글을 쓰고 있니? 무엇을 쓰고 싶니? 지금 행복하니? 일주일 내내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지낸다. 업무상의 요청, 생활의 필요들이 나를 부른다. 가만 생각해 보면 고요하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말 그대로 고요한 이 시간에 나는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나는 네가 궁금하단다.’ 사람의 힘은 자기 자신을 궁금해하는데서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나를 잘 알고,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삶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다. 삶이란 어느 지점까지 다다랐든 간에 흔들림과 일정 부분의 불안을 가지고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삶이기에, 모든 것을 알 수 없기에, 시공간에 제약을 받기에 삶은 언제나 불확실성과 함께이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나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이것이 바로 삶이라며 나를 위로한다. 내게 글은 흔들리면서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며 흔들림을 포용하고 좀 더 넓은 그릇이 되게 하는 고마운 친구이다.
글 쓰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나의 글쓰기에 달린 수많은 이유의 한 조각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진실의 눈으로 삶을 고민하고 주어진 인생을 값지게 살아보고 싶어서 글을 쓰는 인생을 만나보고 싶다. 언젠가 소중한 만남이 있을 때에 그의 글을 통해 그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