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깨달음

by 정필

아빠는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의사결정을 할 때도 100% 확신이 없으면 결정하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100%’라는게 가능하지 않다. 극도로 안전한 선택만을 한다는 건 모든 책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빠는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 늘 한 발 물러서 있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주 작은 일, 이를테면 용돈을 좀 더 달라는 내 요청에도 아빠는 늘 ‘엄마에게 말해라.’고 미뤘다.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게 마련 아닌가. 엄마 아빠가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택시 기사와 시비를 붙어 싸우기도 했고, 억울하게 전세사기를 당할 뻔 하기도 했다. 아들이 어디 가서 싸우고 오기도 했고, 어느 대학에 어떻게 갈지도 결정해야 했다.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은 말 그대로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갑자기 튀어나온다. 늘 이런 결정 앞에서 아빠는 엄마를 찾았다. 두 분이서 결정을 같이 하긴 했겠지만, 내 눈에는 엄마가 거의 모든 결정과 책임을 도맡아 지는 것으로 보였다. 완벽히 통제 가능한 것만 책임지려 하는 아빠의 모습은 어린 내 눈에도 이해되지 않았다. 사건 사고 앞에서 뒤로 숨는 아빠를 보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되뇌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빠를 보면서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아빠는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아서 ‘나서지 말아야지.’ 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아직도 아빠와 나의 시간이 같이 흐르고 있다면, 부자가 마주 앉아 가슴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었을 텐데. 아빠는 떠났고, 그의 입은 굳게 닫혀 있다. 이제는 내 기억을 더듬어 조각을 맞춰보는 일 외에는 아빠를 더 깊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리라.


아빠라고 그러고 싶었을까. 아니었을 거다. 멋지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치만 뜻대로 안되는 게 인생 아닌가. 아빠도 멋지고 폼나게 살고 싶었을거다. 생각대로 좀 안됐을 뿐이다.


어릴 때는 우리 아빠도 좀 돈도 많이 벌어 오고, 가끔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운동도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인생 전부를 투입해 만들어내는 것들이 내게는 좀 부족하게 느껴졌다. 아빠가 내게 주지 못하는 아쉬운 부분을 스스로 반면교사로 삼았다. 나는 나중에 커서 아빠보다 더 나은 아빠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이제 와 곱씹어 보니 내게 준 것이 아빠의 최선이요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빠의 전부를 받고 나서도 모자라다 불평하는 철부지였다. 어떤 누구라도 자식한테 제일 좋은것으로 주고, 훌륭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 않겠는가. 그치만 매일 생활에 치여 살다 보면 에너지는 고갈되고, 자식에게 더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맞딱뜨리게 된다. 아빠 자신도 이러저러한 결핍 속에 애쓰며 살았을 것이 아닌가. 나는 현실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여러 아빠들의 모습을 겹쳐 우리 아빠와 비교했다. 돈도 잘 벌고 시간도 많고 운동도 잘하고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그런 아빠. 아빠가 되어보니 좀 더 알겠다. 내 아내, 내 새끼 최고로 좋은거 주고 싶지 않은 아빠는 없다. 받는 입장에서 그게 못내 아쉬워 보일 수는 있지만, 준 사람에게는 그게 자신의 전부이다. 아빠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아빠가 살아계실 땐 아빠의 존재가 당연해서 고마운 줄도 몰랐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주 조금 아빠를 헤아려 볼 뿐이다.


나도 아마 내 자식들에게 조금 부족한 아빠가 될 것이다. 받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내가 온 힘을 다 한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상대의 모든 것을 받으면서도 받는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그마저 부족하다고 여기는 게 자식이다. 부모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면서도 준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주어도 주어도 부족한 것만 보인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시간이 멈춘 후에야, 어린 내가 아빠가 되고난 후에야 알게되는 사실이다.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되는 건 언제나 너무 늦다. 자식은 부모가 있을 때는 부모의 자리를 의식하지 못한다. 언제나 그 자리가 비워진 후에야 인식한다. 자식은 존재로 효도한다. 부모는 자식이 있음으로 자식에게 모든것을 받는다. 자식의 최선은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리라. 늦지 않았다면 부모에게 무엇을 드려 갚을 수도 있겠으나 부모가 내어준 사랑에 비할 바는 결코 못 된다.


대다수의 인간은 영아 시기, 3살 이전의 시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돌봄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알겠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씻기고…. 아이를 기르는 일이 그냥 되는가 싶어도 절대 그냥 되지 않는다. 부모의 인생을 투입하지 않으면 자식은 자라지 않는다. 첫째 딸이 태어나면서 우리 부부의 에너지는 모두 아이에게로 옮겨 갔다. 뭘 해도 아이가 중심이 된다. 아이는 지금 시기를 곧 잊겠지만, 우리 부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이라는 약속을 하고, 그 안에서 아이를 낳아 기른다. 사랑의 결실인 아이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이 경험이 우리 부부의 젊은 시절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아이가 지금 시기를 기억하지 못해도, 우리 부부의 가슴 속에 모든것은 새겨진다. 부모는 사랑을 줌으로써 행복하다. 아이가 생김으로써 부모는 그런 존재로 새롭게 태어난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도 같이 태어나는 것이며, 아이가 하루하루 자고 깸을 거듭하며 자라나는 것처럼 부모도 같이 자라난다. 아빠가 되고 나서야 아빠를 헤아려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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