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잠시라도 멈춰 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리하여 남은 엄마와 나와 동생이 슬픔을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랬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었고, 우리 셋의 삶에는 아주 커다란 무언가, 아빠의 존재가 빠져나간 구멍이 생겼다. 짧은 휴가는 곧 끝났고, 나는 부대로, 엄마와 동생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역설적으로, 그럼에도 살아가야만 했던 일상이 주저앉고 싶었던 우리 가족 셋을 지탱해주었다.
나는 제대하고 사회인이 되었고, 이제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아빠가 계실때 나는 내 세상에만 사느라 아빠를 보지 못했다. 아빠가 가시고 나니 이제 아빠를 조금 더 헤아려 보게 된다. 요즘같이 더운 여름날은 시원한 맥주 한 잔씩 들고 아빠와 마주 앉아 남자들만의 대화를 나누고 싶다.
한 번도 내 인생에서 아빠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아빠가 있음으로 내 인생이 시작되었고, 나의 시간과 그의 시간은 동시에 존재했다. 나보다 이전에 시작된 아빠의 시간, 한편으로는 내 시간이 있을 수 있는 이유였던 아빠라는 존재가 이제는 없다. 없어 본 적이 없어서,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논리적으로는 당연히 모든 인간은 죽는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 아빠 일줄은 몰랐다. 당연히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흐를 것 같은 시간이 한순간에 멈출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몇 개 안되는 단어를 가지고 기억을 재구성 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아빠를 마음 속에서 다시 불러오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아빠는 어떤 인생을 사셨을까. 그저 두루뭉술하게 ‘가족을 위해 수고하셨다.’고만 여겼다. 으레히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런 마음을 갖는게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게 퉁치고 마는 건 일종의 겉만 번지르르한 게으른 헤아림이다. 아빠도 나와 같은 청년이었을 것이고, 젊은 아빠였을 것이고, 생계를 이어 가야 하는 가장이었을 것인데 말이다. 나도 아빠가 되고 나서야, 아빠는 어땠을까 더 궁금해 진다.
아빠는 스물 아홉에 결혼을 해서, 서른 한 살 여름이 되는 해에 첫 아이인 나를 낳았다. 나는 서른 셋에 아빠가 되었는데, 아빠는 그보다도 2년이 빠른 서른 한 살에 아빠가 되었다. 그때는 육아휴직 제도가 있길 했나, 지금처럼 정보가 많길 했나. 여러모로 아빠가 처음 아빠 노릇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취업을 하려고 보면 경력사항을 증명하기 위해 종종 ‘자격득실확인서’를 출력한다. 서류를 확인하다 보면, 어린 시절 아빠의 직장 이력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짧은 것은 1년, 2년 주기로 직장명이 바뀐다. 아마 아빠도 지금의 나처럼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에, 이곳 저곳에서 일을 하며 살아 오셨다. 결혼을 하고 책임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일에 대한 고민은 단번에 해결되지 않았다. 아빠가 있었더면 나의 시기를 건너온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또 한편으로는 나의 출생과 함께 아빠가 포기한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다. 아빠를 위로하고 싶다.
아빠가 내 나이때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명확치 않다. 서류상 확인되는 직장명 정도가 단서의 전부라서 그것만을 가지고는 일의 종류를 구체화하긴 힘들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빠는 돌아가시는 때 까지도 일을 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나의 유년기때부터 비교적 오래 하신 일이 아파트 단지의 설비담당자였다. 한파가 매서운 날에는 종종 숙직실에서 밤을 꼬박 보내고 다음날 들어오셨던 기억이 난다. 55세 쯤인지, 아니면 그보다도 전인지 아빠는 그 직장을 나와야 했다. 이유는 잘 모른다. 정년퇴직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보통은 그만큼 근무하고 나서는 좀 쉬거나, 아니면 다른 형태로 삶을 꾸려가려는 노력을 할 터인데 아빠는 금세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경기가 어려웠는지, 요건을 충족하는 직장이 거기 뿐이었는지 아빠는 집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도시에 직장을 구했다. 젊은 시절을 한 직장에서 다 보내고 은퇴한 시점이었다. 조금 더 육체를 힘들게 하지 않는 일이었어야 할텐데, 아빠는 몸이 고된 일을 선택했다. 그것이 자발적 선택의 결과였는지, 궁여지책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빠는 일을 하기로 선택했고 그 일은 중년의 마지막에 접어드는 아빠의 육체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고된 일이었다.
돌이켜 보면, 아빠라고 왜 쉬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스물 아홉에 결혼해서 오십 대 중반까지 생계를 이어왔으니 못해도 이십 오 년은 일을 한 셈인데. 십 수년간 근무한 마지막 직장에서 나온 후에는 조금 쉴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아빠가 퇴직 후 곧 다시 일을 구한 이유가 나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의 퇴직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다. 학비며 생활비를 계속 썼고, 급기야 어학연수도 가겠다고 나섰다.
내 탓이라는 자책이라기 보다는 내가 아니었더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희망, 그랬다면 지금 아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가깝다. 가장으로써 아빠가 느꼈을 책임을 무겁게 떠올리게 된다. 아빠는 행복했을 것이다. 고되지만 그럼에도 자식들에게 뭔가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 뭔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만 내가 아빠와 조금 더 깊은 대화를 하고 자주 만남을 가졌더면 조금 일찍 건강상의 신호를 알아차렸을 수도 있는데, 아빠를 생각하니 여러 감정이 뒤엉키고 어쩔 수 없이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