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술을 종종 드셨다. 어릴 적엔 술은 어른들만 마시는 거라 생각해 술 마시는 어른들을 유심히 보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술과 멀어졌다. 주변 사람들이 술을 다들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니면서는 내 젊음을 사느라 같은 도시에 있으면서도 집에 들어오는 일이 드물었다. 아빠는 어른이 된 아들과 술 한 잔 하고싶으셨을 텐데, 별로 내색도 않으셨다. 나는 그런 것을 헤아릴 정신도 없이 성인이 된 직후에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술을 마셨고, 조금 더 후에는 한동안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아빠와 술을 마신 건 아빠가 돌아가시던 그 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아빠가 돌아가시기 두 달 전쯤이었다. 나는 군에서 정기 휴가를 받아 집에 와 있었다. 또래 친구들은 이미 사회인이 되었거나 취업 시험을 준비중에 있었기 때문에, 이십 대 초반처럼 편히 만나기 어려웠다. 또 군에서 고생을 좀 하고 나니, 가족들이 보고 싶기도 했다. 엄마는 내내 일하느라 바쁘면서도, 휴가 나오는 아들 먹이려고 이것 저것 음식을 잔뜩 준비해 두시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나는 집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 당시에도 아빠는 다른 도시에 방을 얻어 근무하셨고,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만 오셨다. 그때도 마침 주말이었던 것 같다. 나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빠와 시간을 좀 갖고 싶었다. 군대에서 받은 월급도 좀 있어서, 평소 해 본 적 없던 ‘치맥’을 제안했다.
우리 집은 편도 2차선 도로에 접해 있었는데, 이 도로를 건너 좁은 골목 끝으로 나가면 좀 더 큰 왕복 6차선 도로가 하나 나온다. 이 두 개의 도로를 건너면 작은 동네 치킨 가게가 하나 있다. 나는 이곳에서 치맥을 하자고,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에게 제안했다. 아빠도 ‘얘가 갑자기 왜이러지?’ 하는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그러자’고 흔쾌히 응하셨다. 실은 치맥 뿐만 아니라 아빠와 단 둘이 음식점에 들어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엔 가끔 외식을 하더라도 네 가족이 함께 다녔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나가서 사느라 가족과 식사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빠랑은 어쩐지 단둘이 있는것조차 어색하게 여겨져서, 식사는 커녕 둘이 있으면 대화도 거의 이어지지 않았다. 없던 용기를 내 치맥을 제안하고 도로를 두 번 건넌 뒤 가게에 들어가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하면서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내가 아빠랑 뭘 사먹으러 온 게 처음이구나.’ 치맥을 주문하는 일이 대단한 경험치를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그 때 새삼 내 아빠라는 어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익숙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 뭘 드시겠냐고, 무슨 치킨을 좋아하냐고 물었지만 아빠에겐 치킨은 그냥 치킨이었다. 나도 치킨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어 적당히 메뉴판 제일 앞에 있던 세트메뉴를 주문했다. 그때 마신 술맛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빠 건강에 대한 이야기 몇 마디, 내 군생활에 대한 이야기 몇 마디, 맥주 몇 모금. 기억나는 건 불콰한 아빠의 안경쓴 얼굴과 새빨개진 내 얼굴, 그리고 그 중간쯤 색깔을 띈 아빠의 주홍색 티셔츠 정도다. 역사적인 부자의 첫 ‘치맥’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몇 안되는, 아마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아빠와의 투샷이다.
치맥 회동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부대로 복귀했다. 아빠는 늘 쓰던 편지지에 그 날의 ‘치맥’을 회상하며 ‘좋았다.’고 적어 보내셨다. ‘담에 또 맛있는거 먹자.’는 말과 함께. 아빠와 처음 둘만 들어간 식당. 어른이 되고 거의 처음으로 함께 마신 술. 나도 그날을 추억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따라 나오는 후회 한 줄. 조금 더 일찍 돈을 벌었더면, 아빠랑 치맥 하자고 좀 더 일찍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하다못해 군대라도 일찍 갔으면, 좀 더 일찍 아빠를 더 생각했을까. 아닐 거다. 지금 하는 후회는 다 늦은 후회다. 아빠가 없으니까 그랬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력의 발현이다. 그래도, 이런 기억이라도 없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혼자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