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만남, 마지막 장면

by 정필

공식적인 아빠의 기일은 11월 22일이다. 정확하게 아빠가 언제 돌아가셨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빠는 11월 23일날 발견되었고 출근 기록과 마지막 연락 정보 등으로 미루어 추측할 뿐이다.


내가 아빠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그로부터 약 3주쯤 전인 11월 4일 토요일이었다. 그 날은 내가 복무하는 군부대의 부대 개방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경기 북부 어느 부대에서 복무중이었다. 아빠는 평소 먼 거리를 흔쾌히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에 일이 너무 고단해서였는지,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어서였는지 아빠는 주말만 되면 쉬려고 하셨다. 나와 동생이, 혹은 엄마가 어딘가로 나들이를 가자고 해도 ‘셋이 다녀오라.’고 하는 편이었다. 그런 아빠가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흔쾌히 수백 키로미터를 이동해 군부대에 오셨다.


아빠는 군 복무를 하지 않으셨다. 국가유공자인 할아버지 덕분에, 아빠는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 유공자가 되었다. 군 면제라고 하면 요즘이나 그때나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아빠에겐 어쩌면 아니었던 듯도 싶다. 할아버지는 입만 열면 전쟁 이야기, 군인의 자세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할아버지의 훈화 말씀 단골 주제는 약육강식, 근면성실 같은 것들이었다.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베푼 것은 군 면제라는 특권이 아니라, ‘너는 깍두기야.’ 하는 꼬리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빠는 보통의 아빠들 보다 군인이 된 나를 더 자랑스러워 하셨다.


평소 그렇게 쉬고 싶어하시던 주말에, 그것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부대에 아빠가 오셨다. 아빠는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다. 나는 남들 다 하는 군생활인데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했지만, 아빠는 군복 입은 나를 참 좋아해 주셨다. 잘 표현도 않는 아빠가 몇 번이나 자랑스럽다고 늠름하다고 해줬는데, 그땐 별 감흥없이 받아들였다. 이제 와 그날을 곱씹어 보니 겉옷이라도 한 번 아빠 어깨에 걸쳐 드릴걸 싶다. 부대 개방 행사는 투박하게 진행됐다. 아들이 사는 생활관을 한 번씩 둘러보고, 연병장에 있는 탱크 앞에서 가족끼리 기념사진을 찍었다. 행사 마무리 전에 세족식 순서가 있었는데, 부모님 두 분 다 씻겨드리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아빠 발을 씻겨드리려고 했는데 아빠는 한사코 사양하셔서 결국 엄마 발을 씻겨드렸다. 아빠는 체중도 많이 나가고, 땀도 많았다. 슬리퍼 신고 앉아서 일하는 직장도 아니어서 늘 신발 안에는 땀이 차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빠 발은 이곳 저곳 갈라지고 찢어진 곳이 많았다. 이사람 저사람 눈치를 신경쓰는 아빠 입장에서 낯선 군부대 복도에서 아들에게 발을 맡기기에는 민망스럽고 부담스러우셨을 것이다. 한 번 쯤 모르는 척 우길 걸. 나나 아빠나 너무 점잖게 행동했나 싶다. 그 때만 해도 몰랐다. 그 날이 아빠의 갈라지고 찢어진 발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는 것을.


행사는 한 시간 즈음 해서 끝이 났다. 군부대 안에서 그 많은 가족들과 장병들이 딱히 뭘 할 수 있었겠는가. 행사의 꽃은 가족과 함께 ‘바깥바람 쐬기’ 였다. 행사 종료 직후 가족들과 함께 외박을 나갔던 기억이 난다. 엄마, 아빠와 동생과 낯선 도시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1박 2일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외박 기간 동안 뭘 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시내의 어느 거리를 걸었던 일만 어슴푸레 그려진다. 뭘 타고 다녔는지, 잠 자는 곳은 어땠는지,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복귀할 때 기억도 없다. 혹시 엄마, 아빠를 먼저 내려가게 하고 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간 건 아닌지 싶다. ‘설마, 아닐거야.’ 그랬을 리 없다고 손사래를 쳐 보지만 어쩐지 그랬을 것 같아 섬뜩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빠의 육성을 듣고, 아빠를 안아 보고, 아빠와 음식을 나눠 먹은 것이 그게 마지막이다. 물론 당시에는 그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 이제 그 시간은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그 날 탱크 앞에서 찍은 가족 사진을 넣어 머그컵을 하나 만들었다. 물을 따라 마실때마다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의 나는 그것이 마지막일 줄 몰랐기에, 뒤늦게 컵을 보면서 기억을 되짚을 뿐이다. 그로부터 3주가 채 못되어 아빠를 보내드리고 나니, 인생이 하루아침에 끝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날이 마지막인줄 알았더면 어땠을까?


많이 달랐을까?


울며 불며 눈물의 작별을 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탈영을 해서 아빠의 마지막 며칠을 함께 했을까? 만일 아빠만 그날이 마지막임을 알았다고 한다면, 아빠는 내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을까? 아들이 탈영병이 되어 아빠와 함께 있는것을 아빠가 원했을까?


그냥 조금 더 찐하게 보내지 않았을까. 탈영을 하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대신,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에 집중했을 것이다. 아빠의 마지막인 줄 알았더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아빠의 발을 씻어 드렸을 것이고, ‘동기들이랑 놀다 들어갈테니 엄마 아빠 먼저 가시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신고합니다!’ 같은 재롱도 부렸을 것이다. 마지막인줄 알았더면 좀 더 애틋하게 보냈을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내 가까운 곳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전에는 죽음이란 나와 거리가 먼 것이며, 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야기였다. 아빠의 죽음은 내게 삶을 가르쳐 주었다. 바로 지금, 조금 더 ‘찐하게’ 보내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다. 만일 내일 삶이 끝나는게 확실하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오늘 못다한 것을 하겠지만, 정확히 자신의 마지막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언젠가 이 삶이 ‘갑자기’ 끝난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한 인간으로써 최선을 다해 삶을 사는 건 ‘내일’ 인생이 끝날 것처럼 사는 게 아니다. 그랬더면 행사에 온 엄마 아빠를 따라 탈영을 했을 것이며, 오늘 모든 것을 소진하는 삶을 살테니 말이다. 인간의 최선은 지금 이 순간에 좀 더 진심을 담는 것, 그것 뿐이다. 그 이상은 사람이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지금을 산다는 것은 ‘내일 죽을 것처럼 산다.’는 말과 조금 다른 말이다. 그렇게 살면 머지 않아 정말 ‘내일 죽어야’ 할 수도 있다. 지금을 산다는 것은 내 삶도 어느 순간에 갑자기 끝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다음이 없을 수도 있음을 아는 것, 아주 생생하게 다음이 없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각하는 것이다. 시간을 아끼는 가장 좋은 방법도 지금을 사는 것 뿐이다. 여기 저기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깎아 내서 다른 데 쓰겠노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아낀 시간은 어디론가 사라질 뿐이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 지금 내가 누리는 시간이 다음 번엔 다른 모습일 것이며, 두 번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지금을 사는 것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모든 순간을 딱 한번만 살 수 있다.


아빠가 그대로 계셨더면 어땠을까. 지금 와 생각하기로는 아빠가 있었으면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값비싼 물건도 선물해 드릴것 같지만 과연 그랬을까. 아빠가 계속 계셨더면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금처럼 갑자기 아빠를 떠나보내야 했겠지.


아빠를 갑자기 떠나보내야 했던 것은 분명 아픈 경험이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아빠가 없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나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한 얼굴을 잃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 하나를 잃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떠나시면서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셨다. 아빠의 죽음이 오히려 나에게 삶을 선물했다. 언제든 갑자기 끝날 수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 주셨다. 나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살지는 않는다. 다만 매일 조금이라도 더 찐하게 살려고 한다. 물보다 진하게, 피보다 진하게 살려고 한다. 아빠가 내게 남겨준 건 남은 내 인생이었다. 아빠는 나의 인생을 시작하게 해 주었고,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삶을 선물해 주셨다. 아빠는 모든 것을 나에게 주셨다.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쪽지를 한 장 발견했다. 어린 시절 식탁 위에 써놓던 것과 같은 종이에 쓴 쪽지다. 부대 개방 행사는 즐거웠으며, 군복 입은 내 모습이 자랑스럽다는 아주아주 간단한 내용이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날짜 쓰는 란이 정갈한 글씨로 쓰여 있다. 아마도 아빠는 편지를 부치는 날 날짜를 채워 넣으려고 하셨던 것 같다. 편지의 마지막 줄에는 —월 —일이라고만 되어있고, 숫자는 쓰여 있지 않다. 부치지 못한 아빠의 편지를 보면서 함께 보냈던 마지막 날을 회상한다. 어쩌면 이것이 아빠가 생전 쓰신 마지막 육필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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