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게 된 지 8년이 지났다. 아빠는 58세가 되지 못하고, 57세가 다 끝나갈 초겨울 무렵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살아서는 아빠를 만날 수 없다. 지금까지 아빠가 살아계셨더면 아빠는 65세가 되었을 것이다. 아빠의 시간은 멈췄기 때문에, 내 기억속의 당신은 언제까지나 57세일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해 스물 일곱 살이던 첫째 아들은 어느새 서른 다섯 살이 되었다. 나는 아빠가 살았던 나이를 또 한 번 살아 가겠지만, 아빠는 더 이상 새로운 시간을 살지 못하실 것이다. 멈춘 아빠의 시간을 생각하며, 더 많은 것이 휘발되기 전에 아빠를 글자로 꺼내 보려고 한다.
가족에 관한 글을 써서 모아두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을때만 해도, 먼저 떠오른 단어는 ‘엄마’였다. 혹은 아내의 이름, ‘예진’ 이라든가, 딸의 이름 ‘윤솔’ 이었다. 그런데 생각을 거듭할수록, ‘아빠’를 먼저 써야 한다는 긴박감을 느꼈다.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제대로 슬퍼하지 못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내 앞에 다가온 현실을 지나 오느라 슬픔을 애써 외면했다. 8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아빠에 대한 기억은 상당 부분 희석되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더 많은 것이 사라져 없어질 것 같았다. 멈춰 있는 아빠의 시간을 그러모아 고이 담아두고 싶었다.
이제는 곁에 없는 아빠를 머리 속으로 느껴 본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든 것을 떠올린다. 아빠의 첫 모습, 목소리, 환하게 웃는 표정 같은 것들을. 나는 금세 난처해지고 만다. 중간 중간 필름이 끊겨있는 비디오테잎처럼, 머리 속에서 아빠가 재생되다가 곧 끊기고 만다. 나는 아빠를 머리 속으로 재생시킬 수 없다. 또 내가 기억하는 아빠에 대한 기억은 너무 단편적이다. 재생되지 않는 머릿속 비디오를 끄고 한참을 떠올려 보아도 아빠가 몇 세에 돌아가셨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와 같은 정도의 것들 뿐이다. 내가 아빠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빠가 더 외로운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린다. 더 많은 것이 휘발되기 전에, 아빠를 많이 생각하고 싶다. 글자는 어디론가 날아가지 않는다. 글자 속에 기억을 담아 아빠를 기억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