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찾아 걷던 날

by 정필

아빠가 보고 싶다. 몸도 없고, 남겨둔 물건도 없는 우리 아빠. 나 말고 다른 이의 가슴속에도 아빠는 살아 있을까. 아빠와 보낼 수 있는 한 시간이 허락된다면 나는 아빠와 무슨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낼까.


아빠의 장례를 마치고 난 직후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있던 아빠가 없으니 마음이 너무 허전했다. 가슴 한 켠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채워져 있을 때는 거기가 구멍이 나는 자리인 줄도 몰랐던 곳. 살아는 있지만 눈만 껌뻑일 뿐이고 눈물도 안 났다. 가슴이 저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비통함과 회한, 죄송한 마음,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다는 아이러니를 다 끌어안고 가라앉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군 복무 중이었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부대로 복귀해야 했다. 휴가 복귀까지 남은 기한이 많지 않았다. 아빠가 이대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친한 친구와 함께 아빠가 지내던 동네를 헤프게 쏘다녔다. 아빠가 걸어 다녔을 거리, 아빠가 퇴근 후 몸을 뉘었을 원룸, 아빠가 식료품, 그러니까 끼니를 때울만한 라면과 군것질 거리 같은 것들을 구매했을 마트 같은 곳들을 무작정 돌아다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빠가 살아왔던 시간들이 어디론가 다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아빠는 사교성이 좋거나 여기저기 말을 잘 붙이는 사람이 아니다. 아빠가 살았던 동네의 누구라도 아빠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아빠의 사진을 핸드폰에 들고 보여주며 “이런 사람 알고 계시냐.”라고 물어보았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혹시 모를 범죄의 가능성도 생각해 보았다. 누가 음식에 못된 짓을 했다든지, 아니면 강도가 든 건 아닐까. 가족에게도 싫은 소리라고는 못하는 아빠가 타인에게 살인의 동기를 제공할 만큼 원한을 샀을 리가 없었다. 경찰서에 가긴 갔다. 뭐라고 물어봤는지,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경찰이 매우 건성으로 응대했다는 것 정도만 기억난다. 그들에겐 그랬겠지. 범죄 혐의점도 없고, 이미 모든 일이 벌어져 버렸으니 말이다. 소위 말해서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저 누구라도 좋으니 아빠의 죽음에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랐다. 아빠가 사라진 데 대해서 그 주위에 살던 누구라도 아빠를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아빠는 그 동네 어느 곳에도 없었다. 아빠는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만 남은 채 모든 곳에서 사라졌다. 아빠는 이제 몇몇 사람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내가 가진 아빠에 대한 기억도 점차 더 희미해질까 봐, 더 늦기 전에 지워지지 않는 글자로 만들어 두고 싶었다.


8년 전에 멈춰 버린 아빠를 다시 불러내어 글자로 쓰고 있는 것은 아빠가 너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떠난 당신이 그리워 나는 당신의 나날들과 내 기억이 맞닿은 지점을 샅샅이 살피고 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다 이와 같지 않던가. 지구상의 누구도 자신이 언제 태어나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한다. 아빠라고 돌아가시기 전 날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을까. 집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단잠에 든 그날 밤이 마지막 밤일 줄 아빠인들 알았으랴. 죽음의 그림자가 아빠를 덮고, 이제 다시 눈 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빠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아직 작별인사도 못했는데.’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딱 하루만 더 있다면….’


잠에 든 뒤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루 이틀 혼자 불 꺼진 방에 누워서 아빠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동네 주민들 중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는 이 없음이 쓸쓸하지 않으셨을까. 엄마와 동생이 마지막 당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당신께서는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었을까. 어디에도 없는 아빠를 내 속에 살려내 본다. 아빠가 보고 싶다. 아빠의 안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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